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영끌도 아니었고, 패닉바잉도 아니었던 청년들은 왜 계속 빚을 져야 했을까.

집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분주’해진 임대인들이 ‘패닉’에 빠져 있으니, 세입자를 위해서라도 임대인의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일부 언론을 통해 기사화 되고 있다. 전세 가격이 2,000만원만 떨어져도, 집 5채를 가진 사람은 1억원을 구해야 하니 이 얼마나 곤란한 처지겠냐는 논리다. 

임대인의 처지를 고려해 대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궤변을 보고있자니, 전월세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청년세대를 영끌족이라 칭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2030세대가 ‘영끌’해 집을 사들이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2020년 7월을 기점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영끌 안 한 3040 좌절”, “정책실패 분노한 30대, 서울 집 더 샀다”, “영끌 안 한게 죄”, “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사... 조급해진 30대 영끌 내 집 마련”, “대출 영끌해서 집 사고 청약...역대 6월 가계대출 사상 최고” 등 계속해서 치솟는 집값에 ‘영끌’ 대출로 집을 사들이는 주체로 청년이 계속해서 호명됐다. 

그 청년들은 무슨 돈으로 집을 샀을까? 당시 언론에서 사례자로 내세웠던 이들은 대체로 30대 중후반이며 고소득계층이고 고자산계층 및 엄빠찬스(Bank of Mom and Dad) 이용자였다. 

2020년 1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주택을 매수한 2030세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증여·상속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더 높았고, 금융기관 대출도 더 많이 이용함과 동시에, 더 많은 임대보증금을 활용하면서 주택을 구입했다. 다만, 이들은 청년세대 중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난 2년간, 20대 중 ‘영끌’ 매수자는 0.2%, ‘갭투기’ 매수자는 0.3%다. 

청년들이 패닉바잉을 통해 집을 사들인다며 호들갑 떨던 일부 언론과 달리, 청년세대의 주택 매수 양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30대의 경우, 주택 소유자 수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년간 5.4% 감소했다. 

반면, 80세 이상의 주택 소유자 수는 2년동안 21.0% 증가하고, 60~69세의 주택 소유자 수 또한 2년간 6.8% 대폭 증가한 것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종합적으로, 전체 주택 소유자에서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12.1%에서 2020년 11.4%, 2021년 10.9%으로 감소했다.

청년세대가 주택을 소유하는 비중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고, 영끌과 갭투기 매수를 감행한 청년 또한 극소수에 그쳤다. 그러나 분명 청년세대의 부채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세대가 짊어지는 빚의 무게가 점차 증가하는 이유는 당최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답은 뻔하다. 바로 보증금 때문이다. 

청년 중 특히 20대 가구주 세대의 부채는 5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몹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부채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월세 보증금 마련 때문이라는 경향성은 보다 짙어지고 있다. 20대 가구주의 담보 대출 중 전월세 보증금 마련을 위한 대출 건수 비율은 2017년 36.9%에서 2022년 64.5%로 두 배 가까이 대폭 증가했다. 반면, 부동산 마련을 위해 담보대출을 받은 건수는 2017년 61.2%에서 2022년 33.0%로 두 배 가까이 감소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집으로 돈벌기 위한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포장지로 쓰여야 하는가? 청년은 때때로 갭투기와 영끌을 서슴지 않는 ‘부동산 큰 손’으로 불렸다가, 이제는 임대인에게 보증금 달라고 하는 ‘당당한 세입자’로 불리면서 임대인의 대출이 수월해졌을 때는 콩고물이라도 얻어갈 수 있는 객체 정도로 취급된다. 계속해서 청년세대와 주택 매수자 및 다주택자의 입장을 동일시하듯 몰아가기에 바쁘다는 점에서 일관된 대우라고도 볼 수 있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청년을 향해 끊임없이 내뱉는 ‘빚 내서 집 사라’, ‘세입자 끼고 집 사라’라는 말은 완벽히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빚을 짊어지는 삶의 무게가 세대를 거듭하며 보다 비대해져서 너무나 많은 이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점에서 틀렸다. 세입자를 끼고 집을 사는 풍조로 인해 결국 집값과 비슷한 수준의 보증금을 내고 깡통주택에 들어갔다가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가 곧 청년의 얼굴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틀렸다. 

청년의 얼굴은 때때로 세입자의 그것과 동일해진다. 실제로 20대의 10명 중 9명, 30대 10명 중 6명이 세입자로 살고 있고, 전세사기를 비롯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확인된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피해 사고를 입은 사람 3명 중 2명은 청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민간임대시장에서 너무나 쉽게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특히, 비교적 적은 보증금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더욱 노골적이다. 어린 연령대의 월세 세입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무시는 현행 법 조항 그 무엇으로도 대처할 만한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소득과 자산이 적을수록, 세입자로 사는 삶은 더 쉽게 위태로워진다. 청년 1인가구 중 저소득층은 민간임대에서 평균 0.9년을 머문다. 이들 중에는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인 경우도 16.2%에 달한다. 

집값이 계속해서 하락하면서, 애당초 주택 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았던 주택에서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보다 심각해지고 있다. 깡통주택이 점차 증가하는 이 시기, 우리의 가장 큰 불안은 보증금 떼어먹는 임대인, 그리고 그런 집에 우리를 집어넣는 중개사다. 우리는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재산을 모으고 빚을 진다. 

전월세 가격이 올라갈수록,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월세 가격이 내려가면, 임대인이 집값이 떨어져서 보증금을 제때 못주겠다고 우기는 일 때문에 역시나 또 쉽지 않다. 지금은 후자의 시기인데, 그러다보니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심각하다. 임대인은 우리에게 돌려줄 돈이 없으니 쭉 살거나, 알아서 다음 세입자를 구해오거나, 아니면 그냥 이사 나간 뒤 나중에 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다. 세입자의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아도 세입자가 대단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몹시 취약한 탓이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함부로 전월세 가격을 올릴 수 없도록 하자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세입자의 보증금을 함부로 떼먹거나 활용할 수 없도록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동시에, 보증금 돌려줄 능력이 없는 임대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땅히 살만한 집으로서 공공임대가 보다 많아져야 할 것이다. 영끌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청년을 위한 분양주택은 결코 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임대인의 대출을 쉽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 또한, 더 많은 투기를 조장하기 위한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증금 떼이지 않기 위해 임대인의 집값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거나 임대인의 대출이 더 늘어나길 바라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다. 
 

근거자료 및 출처
  • 홍정훈, 2022 자금조달계획서를 통해 살펴본 2030세대 ‘영끌’ 실태 / 2022 부동산분석학회 학술대회 
  • 홍정훈·김기태, 2020 ‘영끌’하는 2030세대와 1가구1주택 소유 체제 /  2020 사회정책연합학술대회
  • 2022, 청년세대 내 왜곡된 주거불평등, 2022 국회 토론회 ‘부동산 시장 위기,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문 / 김솔아 
  •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 통계청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대표, 2021. 02~) 

 

* 민달팽이유니온: 전세사기부터 공공임대까지 청년 대상으로 주거상담과 주거교육을 진행한다. 현장에서 발굴한 이슈를 중심으로 지역에서는 청년 세입자 모임을 만들어가고, 광역에서는 청년과 세입자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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