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한국은 과거 늑대와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늑대는 한반도 야생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국은 과거 늑대와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늑대는 한반도 야생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그래픽=시사위크

시사위크=강준혁 기자  “잿빛 파괴자에겐 교묘한 독약도, 그 어떤 마법과 주문도 통하지 않았다.” 미국의 소설작가 어니스트 시튼은 ‘시튼 동물기’에서 전설적인 늑대 ‘로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5마리의 부하들을 데리고 수천마리의 가축을 도살한 로보의 악마스러움을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늑대들이 인간을 본다면 반대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에겐 어떤 자비도, 공존의 의지도 없었다”고 말이다.

◇ 인간과 공존했던 늑대, 일제강점기에 씨가 마르다

한반도에 서식했던 늑대는 ‘몽골리안 울프(Canis lupus chanco)’의 친척인 ‘몽골리안 울프-코레아누스(Canis lupus coreanus)’다. 몸길이 95~120cm, 몸무게 12~80kg 정도의 소형 늑대종으로, 일반 몽골리안 울프보다 주둥이가 좁은 것이 특징이다. 1923년 일본의 생물학자 요시오 아베에 의해 별도 아종으로 정식 등재됐다.

한국 늑대는 과거 한반도 북부 및 중부지역에 쉽게 볼 수 있던 동물이었다. 1910년대 일본 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반도에 서식했던 늑대의 수는 수천마리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외 국가들과 달리 인간과의 충돌은 많지 않았다. 늑대의 활동역역과 인간 거주지역이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늑대가 민가 거주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1413년 전북 진안군 1건이 전부였다.

국립생태원 연구원들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호랑이, 늑대, 표범의 서식분포(2019)’ 보고서에서 “한국 늑대의 서식지는 큰 바위나 절벽 등 산림이 깊숙한 지역이었다”며 “때문에 조선시대 인간의 거주지나 활동 지역과 겹치지 않아 목격된 일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토종 늑대인 ‘몽골리안 울프-코레아누스(Canis lupus coreanus)’의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한국 토종 늑대인 ‘몽골리안 울프-코레아누스(Canis lupus coreanus)’의 모습. / 국립생물자원관

하지만 19세기 후반,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과거 산과 들판이었던 지역엔 건물이 들어섰고, 인구수도 증가했다. 그 결과, 늑대와 인간의 거주 환경이 겹치기 시작했고, 충돌도 잦아졌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기록한 통계에 따르면 1915년 한 해 동안 늑대에게 희생당한 사람 수는 113명이었다. 잡아먹힌 가축 수도 340여 마리에 이르렀다.

피해가 커지자 조선총독부에선 1915년부터 대대적인 늑대 퇴치에 나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해수구제사업’이다. 이 사업의 표면적 명분은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가하는 해수(害獸: 해로운 짐승)를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수구제사업의 실질적 의도는 들끓는 조선의 민심을 잠재우고, 일본인들의 안정적 정착을 위함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의 저자 엔도 키미오는 “한반도 국경 지대까지 일본인을 보내고자 했던 조선총독부에게 호랑이와 늑대 등 맹수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며 “이들은 그 동물들이 생태계에서 담당해온 역할과 위치 등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제거해버렸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1915년부터 1942년까지 이어진 해수구제사업으로 한국에 서식했던 늑대는 씨가 말랐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369마리의 늑대가 포획됐으며, 일부 문건엔 3,000마리가 넘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68년 충북 음성에서 마지막 늑대가 잡인 이후, 5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야생 환경에서 포착된 늑대는 없다.

1915년부터 1942년까지 이어진 일제 해수구제사업으로 한국 늑대를 포함한 호랑이, 표범 등 육식 동물 대다수가 멸종당했다. 사진은 1917년 11월 16일 일본 야마모토 정호군이 표범을 사살한 모습./ 에이도스
1915년부터 1942년까지 이어진 일제 해수구제사업으로 한국 늑대를 포함한 호랑이, 표범 등 육식 동물 대다수가 멸종당했다. 사진은 1917년 11월 16일 일본 야마모토 정호군이 표범을 사살한 모습. / 에이도스

◇ 자연 균형의 수호자 ‘늑대’

한반도에서 늑대가 멸종하면서 인명 및 가축 피해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시작됐다. 바로 생태계 먹이사슬의 파괴였다.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는 토끼, 멧돼지 등 하위계층의 동물 숫자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즉, 늑대의 멸종은 먹이사슬 하위계층 동물의 급격한 개체 수 증가를 의미한다. 최근 국내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멧돼지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늑대 멸종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늑대가 복원하면 파괴된 자연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실제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바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사업이다.

1800년대 미국에서 대규모 목축산업이 시작되면서 늑대 사냥이 성행했다. 그 결과, 1920년대 이르러 옐로스톤 지역에선 늑대가 자취를 감췄다. 이로 인해 사슴 등 초식동물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근처 식물 자원을 모두 먹어치우면서 옐로스톤 지역은 황폐화가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환경단체는 늑대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복원사업은 캐나다에서 들여온 14마리의 늑대를 옐로스톤 지역에 방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995년 늑대를 방생한 이후, 2022년 기준 옐로스톤에 거주하는 늑대는 89마리까지 늘어났다. 늑대가 늘어나면서 초식동물 개체 수 증가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러면서 옐로스톤 내 식물 생태계는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생물학자 더글라스 W. 스미스는 “옐로스톤에 복원된 늑대는 비버 등 타 동물 개체 수는 늘리고, 초목을 되살리는 등 생태적 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엘크 등 초식동물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던 버드나무군의 회복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대전 오월드에서 태어난 새끼 늑대들./ 대전 오월드
대전 오월드에서 태어난 새끼 늑대들. / 대전 오월드

◇ 멸종당한 한국 늑대, 대전의 테마파크서 복원되다

이처럼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종 보전 문제를 고려해 한국에서도 늑대 복원 시도가 이뤄진 바 있다. 지난 2015년 환경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는 한국 늑대 복원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인명피해 등의 우려로 인해 현재는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생태원 복원연구기획팀 관계자 역시 “현재 늑대 복원과 관련해 진행 및 검토 중인 연구·사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한국 늑대 복원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전광역시의 테마파크 ‘대전 오월드’에서 한국 늑대 복원에 성공한 것이다. 대전 오월드는 지난 2004년부터 한국 늑대 종 복원을 위해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협조를 진행했다. 그리고 2008년,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늑대 포획 및 반출 승인을 얻었고, 야생 늑대 7마리를 반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늑대들은 볼가강 유역 샤라토프주에서 포획된 것으로, 한국 토종 늑대인 몽골리안 울프-코레아누스의 후손들이다.

대전 오월드에선 이 늑대들을 위해 약 4,000㎢ 넓이의 사육장 ‘늑대 사파리’를 건축했다. 자연상태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을 조성한 덕분에 인공 수정 및 포육 작업 없이도 늑대들끼리 짝짓기를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0년 5월, 건강한 한국 늑대 새끼 6마리가 태어났다. 한반도에서 새끼 늑대가 무사히 태어난 것은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후 2020년 4월에도 새끼 늑대들이 태어나면서, 오월드의 한국 늑대 가족은 16마리까지 늘어났다.

과거 한반도의 드넓은 산 속을 누볐던 한국 늑대는 인간과의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물론 늑대가 다시 한국의 야생을 누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만약 그 날이 다시 올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과의 공존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과오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근거자료 및 출처

멸종됐던 한국늑대 種복원 성공 (대전시청)

2010. 06 07 대전시청

Ecological Effects of Wolves in Anthropogenic Landscapes: The Potential for Trophic Cascades Is Context-Dependent (2021)

2021 . 01 . 08  

Wolf Reintroduction Changes Ecosystem in Yellowstone

2021. 06. 30 yellowstonepark

엔도 키미오(遠藤公男)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2009)

2009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취재 및 인터뷰

202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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