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편집자 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1월 대표발의 한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을 연 13% 수준으로 낮추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1월 대표발의 한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을 연 13% 수준으로 낮추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2023년 경제를 내다보는 석학들의 평가는 공통적으로 냉랭하다. ‘경제 한파’ ‘경제 혹한’에 이어 ‘경제 폭풍’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국내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음을 경고하고 있다.

서민들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경제위기 중 하나는 대출 금리 인상, 또는 신규 대출 중단이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여파로 우리나라 또한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대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의 신규 신용대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저신용자들이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서민 자금줄 경색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6일 공개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5대 시중은행(우리・KB국민・신한・농협・하나)의 저신용자(NICE 신용평가 664점 이하) 대상 신규 신용대출 취급액은 총 1,192억원으로 2021년 같은 기간(1,592억) 대비 25.1% 감소했다. 계좌 수는 1만2,931좌에서 9,189좌로 28.9%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잔액 역시 2021년 1월부터 10월에는 23조3,000억원이었으나 2022년 1월부터 10월에는 19조5,000억원으로 16.1%가 감소했다. 계좌 수 역시 178만좌에서 147만좌로 17.4% 감소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 토스 등 인터넷 은행마저 2022년 하반기부터는 저신용자 대상 신규대출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22년 1월 신규취급액이 117억원이었던 것에 비해 같은 해 10월에는 68억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으며, 신규계좌 수도 2022년 1월 896좌에서 10월 416좌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계부채폭탄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상황이지만 국내 1위 카드사까지 대출 한도를 대폭 낮추고, 저축은행·캐피탈 등 일부 금융사들은 대출중개플랫폼 ‘시스템 점검’을 이유로 대출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현금서비스 한도 또한 대부분의 카드사에서 대폭 줄였다. 사실상 서민들의 자금줄이 틀어막힌 셈이다. 심지어 저축은행 가운데 저신용자들의 희망인 햇살론조차 취급을 중단하는 곳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광고가 붙어있다. 새해 들어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최대 8%를 돌파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올해 첫 영업일인 전날 기준 5.27~8.12%를 나타냈다. / 뉴시스
3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광고가 붙어있다. 새해 들어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최대 8%를 돌파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올해 첫 영업일인 전날 기준 5.27~8.12%를 나타냈다. / 뉴시스

◇ 자금줄은 막히는데 가계부채는 뛰어

반면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말 가계 부채 잔액은 1,870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아울러 은행과 비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도 각각 0.03%p, 0.04%p 상승하면서 부실리스크가 커졌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2022년 11월 예금은행의 대출평균 금리는 신규취급액 기준 연 5.64%로 2012년 5월(5.6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평균금리도 연 5.57%로 2012년 3월(5.62%) 이후 10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연 7.85%로 지난 2012년 6월(7.8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계 빚이 불어나고 대출 연체율은 느는데 이자부담도 늘어난 셈이다.

반면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4~4.5%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과도한 금리 경쟁을 자제하라고 주문하면서 하락 전환한 이후 내림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들 사이에서는 실제 적용받는 대출금리는 오르고 있는데 예금금리만 내려가는 결과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법정 최고금리 하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재조명 받고 있다. 시중 은행의 금리는 5%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형성돼 있는데 대출 최고이자율은 여전히 최대 연 25%까지 정할 수 있다. 경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1월 대표발의 한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장기적인 경기 불황과 소비위축으로 인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층에게 높은 대출이자율이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으므로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을 연 13% 수준으로 낮추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고이자율이 낮아지면 서민자금줄 경색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연체 등 부실 위험이 높은 저신용자 대상 대출은 부실 위험이 높은 금리로 상쇄할 수 있지만, 금리 상한이 낮아지면 대출 승인이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법정 최고이자율의 영향을 받는 은행권, 제2금융권, 대부업에서도 대출 승인이 나지 않으면 당장 생계유지를 위해 급전이 간절한 취약계층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이 의원이 제시한 개정안 외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법정 최고이자율을 내려야 한다는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다수 발의되어 있다. 윤상현 민주당 의원은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12%를 초과하지 못하게 규정하자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15%로 낮추고, 이자총액이 원금을 넘을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 한 바 있다.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 상향 조정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정부의 법정 최고금리 조정 상향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근거자료 및 출처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수진의원 등 10인)

2021.11.25 의안정보시스템
금융안정보고서
2022.12.22 한국은행
2022년 11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2022.12.31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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