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희 뜨거운 배우 나문희. / CJ ENM
여전희 뜨거운 배우 나문희. /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직도 현장에 가면 참 신이 나요. 철없이.” 올해 나이 82세, 60여 년의 연기 인생. ‘노배우’ 나문희의 연기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면 겁 없이 뛰어들고 싶고, 여전히 현장이 즐겁단다.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도 그런 나문희의 열정과 애정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정성화 분)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렸다. 

영화 ‘해운대’(2009), ‘국제시장’(2014)으로 한국 최초 ‘쌍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009년 초연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겨낸 ‘영웅’은 영웅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풍성한 음악과 볼거리,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그려내 호평을 얻고 있다. 

나문희는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를 연기했다. 나문희는 대의를 위한 아들의 희생 앞에서도 의연했던 강인한 모정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열연으로 담아내 관객의 눈물을 쏙 뺀다. 그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부른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곱씹고 또 곱씹게 하는 ‘영웅’의 명장면 중 하나다. 참고로 해당 신은 나문희가 데뷔 이래 가장 많은 테이크를 소화하며 남다른 열정으로 완성한 장면이다. 

최근 나문희는 <시사위크>와 만나 ‘영웅’ 출연 계기부터 촬영 과정,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오랜 기간 배우로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 연기 철학 등 솔직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영웅’을 두고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다”며 작품을 향한 자부심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나문희가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으로 극장가에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 CJ ENM
나문희가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으로 극장가에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 CJ ENM

-‘영웅’을 택한 이유는. 
“윤제균 감독님과 ‘하모니’를 같이 했다. 윤 감독이 제작을 하고 나는 출연을 했는데, 그때 나에 대한 대접을 잘해주더라.(웃음) 다른 배우들이 섭섭할 수 있지만, 끝을 나로 마무리하는, 내 차례를 잘 넣어줘서 감사했다. 나를 믿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윤 감독을 믿고 조마리아 여사를 하라고 하니까 했다. 제의가 들어오기 전에는 조마리아 여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남들 아는 만큼만 알고 그랬다.”

-뮤지컬 장르인데다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했다. 부담감은 없었나.  
“처음에는 뮤지컬영화로 했을 때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또 내가 뮤지컬영화에서 조마리아 여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연기자는 시키면 하는 거잖나. 그래서 그냥 우리 큰아이에게 노래 레슨을 받으면서 했다. 큰아이가 음악을 전공했다. 나도 문화방송 1기생으로 들어갔는데, 그땐 참 가난했던 때였다. 시간제로 오전 중에 DJ를 하면 어떻겠냐 해서 잘은 모르지만 책도 읽어주고 그랬다. 그때 음악 공부를 참 많이 했다. 시집가서는 애들이 음악 레슨을 받았다. 큰아이는 피아노, 둘째는 바이올린을 배웠다. 겨우겨우 벌어서 지원해줬다. 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집안이다. 하하.”

-딸이 어떤 코칭을 해줬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떤 말을 해줬나. 
“걔는 조금 잔인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면도 있는데, 잘 안 만난다. 하하. 딸이 영화가 좋다고 했다.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 옆 사람이 너무 울어서 자기도 따라 울었다고 하더라.(웃음)”

‘영웅’에서 조마리아를 연기한 나문희 스틸. / CJ ENM
‘영웅’에서 조마리아를 연기한 나문희 스틸. / CJ ENM

-조마리아 여사의 선택은 어떻게 다가왔나. 어머니로서 느낀 감정은. 
“사실이라는데도 실감 나지 않았다. 엄마라면 자식이 10살이든 30살이든 50살이든 아직도 아이 같고 우선이거든. 나도 그렇다. 연기는 연기고, 자식은 자식이니까. 그런데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에게 일본군하고 끝까지 싸워라, 목숨을 바쳐라 하잖나. 그리고 마지막 사형집행이 떨어지기 전에도 나라를 위해 자식을 바친다.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안중근이 죽고 여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연기력으로 끝까지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열심히 했다.”

-노래하면서 연기를 하는 게 힘들진 않았나. 
“지금 생각하기엔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힘들진 않았는데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을 거다. 머리도 쪽지고 나이도 있고 신 자체도 굉장히 어려운데 시간 내에 해내야 하고 게다가 라이브도 해야 해서 어려웠다. 영화가 나오니까 정말 보람이 있다. 음은 생각하지 않고 가사와 감정 위주로 했다. 나는 절대로 여러 번 가자고 안 한다. 맨 처음 한 것을 제일 좋아하는데, 윤제균 감독이 그렇게 욕심을 내더라. 담장 밑에서 촬영한 것도 너무 힘들었다. 이 신이 정말 잘 나올까 했는데 나중에 편집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신났다. 그때 그 장면 찍고 윤제균 감독이 너무 싫었다. 근데 그게 끝이었나 그래서 다신 안 보면 되니까 했다. 하하.”

-윤제균 감독이 다시 작품을 함께 하자고 한다면 응할 것인가. 
“해야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으니 해야겠지. 나 윤제균 감독 좋아한다.(웃음)”

나문희가 연기 철학을 밝혔다. / CJ ENM​
나문희가 연기 철학을 밝혔다. / CJ ENM​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로 대중과 만나왔다. 배우 개인에게는 어떤 캐릭터를 가장 애정하고 잊지 못하나.   
“호박고구마(‘거침없이 하이킥’)가 제일 좋다. 사는 게 힘드니까 희극적인 요소가 많은 캐릭터가 좋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좋아하니까. 연기 자체가 즐겁진 않다. 어떤 날은 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들고 그런데, 일단 현장에 가면 참 신이 난다. 아직도 철없이. 그게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연기가 미웠던 시기도 있었나. 극복해 내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어느 나이까지는 그것도 참고 다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는 하기 싫다. 어떤 작품이든 어느 구석에 매력이 있어야 하지 그냥 하고 싶지는 않다. 우선 현실적으로 공감이 가야 하고 그 작품만이 갖고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 다 모아놓은 것 같은 건 정말 싫다. 작품의 독창성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평소에 사는 것을 제대로 살고 관찰을 잘 해야 하는 것. 연기에 묻어난다고 생각한다. 악역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악하게 된다든지, 환경이 고약하니까 사람이 그렇게 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통해 인물이 창조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뭐 하나를 하더라도 바르게 하자고 생각한다. 그래도 뭐 나도 다 똑같다. 똑같아서 좋기도 하다.”

-여전히 현장에 가면 신이 난다고 했다. 그런 현장을 위해 꼭 지키고자 하는 게 있나.   
“유연성이다. 나이 들수록 유연성이 중요한 것 같다. 나를 포함해 모든 할머니들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딸아이가 항상 ‘엄마, 유연성을 가져야 해’라고 한다. 예전에는 우리 영감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세상에 그런대로 잘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배우가 아닌 삶은 어떤가. 연기를 제외한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 
“우선 음식쓰레기 버리는 것은 꼭 내가 한다. 우리가 먹은 것이니까 오시는 분에게 맡기는 게 미안해서 그것은 꼭 내가 버린다. 쓰레기를 처리해 주시는,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항상 관심을 갖는다. 또 뜨거운 물에 목욕하는 게 너무 중요하다. 대중목욕탕에 간다. 하루에 한 번씩은 잠깐씩 햇빛을 쐬고 집에서 실내자전거를 타는 것도 꾸준히 하려고 한다. 해보니 뱃살도 줄어들고 좋더라. 그리고 이제는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나문희. / CJ ENM​
도전을 멈추지 않는 나문희. / CJ ENM​

-대중목욕탕에 간다는 게 의외다. 대중이 알아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어떨 때는 있지만, 깨려고 한다. 나는 굉장히 자유롭게 살고 싶다. 시장에도 가고 버스도 타고 한다. 그런 것들이 배우 나문희로서 아주 일상적인 것을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들면 된장찌개를 끓여도 정말 끓일 줄 아는 것과 흉내내는 것은 차이가 있잖나. 사실적인 연기가 중요한 것 같다.” 

-도전을 서슴지 않는 편이다. 최근 ‘진격의 할매’ ‘뜨거운 씽어즈’ 등 예능프로그램뿐 아니라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도 도전했는데. 
“나도 새로운 일을 할 때는 항상 두려움이 있지만, 겁 없이 달려드는 면도 있다. 틱톡은 매일 움직일 수 있고 젊은 사람들의 감각도 익히게 돼 좋다. 내게 닥친 것은 그냥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너무 뻔한 것은 하기 싫다. 그렇지 않고 새로운 일이면 괜찮다. 유쾌하고 좋다.”

-윤여정, 이순재 등 또래 배우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어떤 감흥을 느끼나. 
“윤여정을 보면 샘이 나면서도 자랑스럽고 좋다. 어디 가서도 자기 자리에 잘 서있는 게 너무 훌륭하다. 그리고 이순재 선생님은 참 훌륭한 것 같다. 대학로에 ‘이순재로’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훌륭한 분이다. ‘아이 캔 스피크’ 이전만 해도 열등감이 많았다. 자꾸 누군가와 경쟁하려 했는데 그렇게 상을 많이 받고 나니 여한이 없어졌달까. 자유로워졌고 누구와 경쟁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다. 잘나졌나 보다. 하하. 이만하면 다 이뤘다. 그냥 배우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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