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편집자 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이자제한법의 가장 큰 쟁점은 법정 최고금리의 조정이다. 높은 대출이자 때문에 고통 받는 서민을 위해 최고이자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오히려 낮은 이자율로 인해 서민들이 제도권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최고이자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현행 이자제한법은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을 연 25%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지난 2021년 7월부터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을 연 20%로 제한하고 있다.

2021년 24%에서 20%로 한차례 인하가 됐음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법정 최고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다수 발의돼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서일준 의원 등 12인이 아예 최고이자율을 연 20% 미만으로 하향 조정하자고 제안하는 법안을 냈고, 윤상현 의원 등 16인은 최고이자율을 연 12%를 초과하여 정하지 못하게 규정하자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제안했다. 이수진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최고이자율을 연 13% 수준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민병덕 의원 등 14인은 금리의 상한을 연 15%로, 김주영 의원 등 14인도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15%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 큰 폭의 예대마진 여전

시중 은행의 금리가 5%대로 떨어진 것과 비교해 20%인 최고이자율이 실정과 맞지 않아 이같은 법안들이 발의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평균적인 예금은행, 상호저축은행의 대출 금리와 법정 최고이자율에도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2022년 11월 기준 예금은행 대출금리는 평균 5.64%, 상호저축은행 대출 금리는 평균 11.96%였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장기적인 경기 불황과 소비위축에 따라 높은 이자율은 서민층에 큰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코로나19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하위 20%에 해당하는 소득 1분위 가구의 2020년 2∼4분기 소득이 2019년 동기 대비 17.1% 급감했다. 상위 20% 가구의 소득감소율 1.5%에 비해 10배 이상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율이 높은 제2금융이나 대부업의 대출이 많은 취약계층은 이자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2022년 10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24%로 전월 대비 0.03%p 상승했다. 10월 중 신규연체 발생액도 전월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다 통상 낮은 수치를 보이는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마저 지난 9월부터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에 더해 정부는 저축성 수신 평균 금리 인상 경쟁 자제를 시중은행에 촉구했다. 반면 대출이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여 예대마진이 큰 편이다. 예금이자는 떨어지고 대출이자는 치솟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길어지자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제시하는 평균 최고이자율은 13%선이다. 끝도 없이 올라가는 대출 이자에 상한선을 제시한 셈이다. 적정한 최고 법정최고금리는 11.3~15.0%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기연구원은 업무원가와 조달원가 등 적정대출금리 산정에 포함되는 비용의 혁신을 통해 실현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상과 인하를 두고 국회와 금융당국의 주장이 팽팽하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법정 최고금리 인상과 인하를 두고 국회와 금융당국의 주장이 팽팽하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 대부업의 대출마저 틀어 막혀

반면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과 정반대로 금융당국은 법정 최고금리 인상을 고심 중이다. 지난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법정 최고금리를 최대 27.9%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연 66%였던 법정 최고금리가 20%까지 떨어지면서 오히려 저신용자들의 돈줄이 막혔다는 것이다.

은행권과 제2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중‧저신용자들은 대부분 대부업을 찾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6월 말 기준 대부 대출 잔액은 15조8,764억원으로 6개월 전보다 1조2,335억원(8.4%) 증가했다.

눈여겨 볼 점은 담보대출이 8조5,488억원으로 53.8%를 차지했고, 신용대출은 7조3,276억원으로 46.2%를 점했다는 부분이다. 2021년 사상 처음으로 담보대출이 신용대출의 비중을 넘어선 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담보가 없는 저신용자에게 나가는 대출이 감소했다는 뜻이고, 담보조차 없는 저신용자들의 대출 절벽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대부업계는 신용대출을 줄여나가는 것에 더해 신규 대출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러시앤캐시’로 잘 알려진 대부업 1위 아프로파이낸셜 대부는 지난해 12월 26일 신규 신용대출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17~2018년 러시앤캐시를 제치고 대부업 1위를 차지했던 ‘산와머니’의 산와대부는 2019년 3월 신규대출을 중단했다. ‘웰컴론’의 웰컴크레디라인대부는 2021년 12월 대부업 시장에서 철수했다.

주로 연체 등 부실 위험이 높은 저신용자 대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대부업체들은 법정 최고금리가 높을 때는 부실 위험을 높은 금리로 상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출로 받을 수 있는 금리 상한이 2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저신용자 대출을 기피하게 된 것이다.

◇ 연동형 조절 방안 등 모색

당장 생계유지를 위해 급전이 간절한 취약계층은 대부업 대출도 거절되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고리사채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 이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불법 사금융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더 큰 구제비용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금융당국도 국회에 법정 최고금리 인하 법률이 발의된 상황에서 당장 법정 최고금리를 급격하게 올리자고 제안하기는 어렵다. 또한 과거 연66%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대출자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고, 2002년 카드사태를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 어떻게 다가갈지도 미지수다. 이에 금융당국은 기준금리를 지표로 법정 최고금리를 연동형으로 조절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는 곧장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금융위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부가 서민 사채알선에 나서고 있다”며 “대부업자 손 벌려서 취약계층 돌보겠다는 거냐. 이런 발상 자체를 거두라”고 쓴소리를 했다.

오히려 코로나 시기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실현하고 있는 시중은행이 대출의 2%를 서민 대출하도록 하는 정책 등을 제시했다. 시중은행의 대출 규모 중 1%만 저신용자에게 대출해도 서민들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또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부업‧불법사금융 또는 고금리 대출 서민을 제도권 대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긴급 민생 프로젝트를 제시한 바 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2021. 11. 25 의안정보시스템

코로나19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친 영향

2021. 5. 10 한국은행

2022.10월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

2022. 12. 15 금융감독원

공정금융 관점에서 법정 최고금리의 적정 수준 검토

2021. 1. 6 경기연구원

2022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

2022. 12. 28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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