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좌)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우).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고집스러움은 재계에서 유명하다. 뭔가를 목표로 세우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선회하는 일이 없다. 그만큼 사업에 대해서만큼은 ‘일방통행’ 스타일이다.

단적인 예로, 123층 규모로 건립중인 ‘제2롯데월드’만 봐도 그렇다. 신격호 회장은 서울 신천동 29번지 일대 제2롯데월드 부지를 사놓고 무려 20년 넘게 묵혔다가 기어코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신격호 회장이 이 땅을 사들인 것은 27년 전인 1987년이다. “63빌딩의 2배 높이로 한국의 디즈니랜드를 짓겠다”며 사업을 계획을 짠 게 시작이었다. 당시 서울시 소유였던 부지를 신 회장은 1987년 12월14일(등기일 기준) 약 82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과 5~6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전투기나 헬기 등이 충돌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종 건축허가가 날 때까지 12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다. 제2롯데월드의 최초 공사 허가는 1998년에 내려졌지만 제2롯데월드 신축에 대해 공군 등 관련기관이 지속적으로 제동을 걸어오면서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해당 건물에 대한 최종 건축허가는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야 내려졌고, 다음해인 2010년 10월 서울시가 건축 허가를 건축위원회에서 통과시키면서 마침내 신 회장의 숙원사업은 빛을 보게 됐다.

신격호 회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강남권 노른자위 땅을 무려 20여년이나 묵혀두며 고집스럽게 건축허가를 기다린 것이다. 그것이 항간에 떠돌고 있는 정권의 비호 덕분이었든, 롯데 측 주장대로 ‘대단한 사업성’을 인정받은 데 따른 결과였든 어쨌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신 회장의 오기와 근성만큼은 혀를 내두를 만 하다.

그의 아들이자, 현재 롯데그룹의 모든 살림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이 평생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알짜배기 노른자땅을 20년 동안 고스란히 묵혀두고 기초를 준비했다면, 바통을 이어받은 아들 신동빈 회장은 숙원사업의 ‘완성’을 위해 터를 닦고 뼈대를 올리며 집요하게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 지난해 4월 24일 서울 송파소방서(서장 임선호) 대원들이 송파구 신천동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공사장에서 현지적응 및 현장안전점검을 하고 있다.(사진=송파소방서 제공)
그러나 고집이 지나치면 ‘아집’이 된다. 최근 롯데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가 그렇다. 건물 사용승인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1,000명에 달하는 직원을 채용하겠다며 채용박람회 계획을 발표하는가 하면, 이에 앞서 쇼핑몰에 입점할 업체를 선정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5월 제2롯데월드 일부 개장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해당 건물에 대해 (임시)사용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당 건물 사용을 위해서는 (임시)사용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롯데 측은 현재까지 사용승인과 관련한 서류를 서울시에 제출하거나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상태에서 매장 분양과 인력 채용부터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제2롯데월드는 지난달 중순 발생한 47층 화재사고 때문에 안전진단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5월 개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롯데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5월 개장’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롯데가 잠실에 건축하고 있는 것은 신격호 회장 집 앞마당에 세우는 동상이나 창고건물이 아니다. 완공되면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빌딩으로 기록될 건물이다.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사진=잠실에 건립중인 123층 규모의 제2롯데월드.
하지만 기둥에 금이 갔다는 얘기도 들리고, 인명 사고도 나고, 최근엔 화재까지 발생해 주변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사용승인도 받지 않은 건물의 매장을 분양하고,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너무도 위험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고집’으로 밀어붙여서 될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이 같은 롯데의 무리수가 신 회장 부자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문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무고한 희생과 위험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 회장 부자는 20년간이나 땅을 묵혀가면서까지 우직하게 버텨온 ‘기다림’도 ‘평정심’도 잃었다. 아흔이 넘은 재벌 오너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공사기간 지연에 따른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손실을 따지는데 급급해, 그리고 숙원사업을 기간 내에 이뤄야 한다는 조바심에 쫓겨 끝까지 무리수를 띄우는 옹고집을 부린다면 아마도 신 회장 부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생각보다 처철하고 끔찍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이들이 평생을 꿈꿔온 소망이 결국 ‘하룻밤의 꿈’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