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먼저 나는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좋아한다는 고백부터 하고 싶네. 젊었을 땐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돌아다녀도 시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치안이 비교적 완벽해서 좋았고, 요즘에는 막말하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해 늘그막의 삶을 무료하지 않게 해주는 사회여서 좋다네. 바보상자라고 믿고 있는 TV를 보지 않아도 인터넷망을 통해 듣는 헛소리들이 내가 아직 늙지 않았음을 수시로 확인하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가능하다면 그 ‘망언’의 주인공들에게 막걸리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다네. 귀가 순해지는 나이에 그런 막말이라도 들어야 열이 나서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분들이 고마울 수밖에.

지난주에는 ‘국민 사위’라고 불리는 피부과 의사가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내뱉은 막말들이 나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네. 유신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많은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던 80년대에 의사공부만 열심히 한 사람답게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자유롭고 천방지축인지, 혼자 화내고 웃다가 이렇게 자네에게 편지까지 쓰게 되었네. 난 그가 무슨 선행을 해서 국민사위라는 어마어마한 호칭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내 사위 중 하나가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함께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곤욕스러웠을 것 같네. 공부만 잘 하면 좋은 대학 나와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우리 사회체제가 만들어낸 가짜 ‘국민사위’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네. 또 막말을 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위험한 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를 길러낸 게 우리 교육체제라고 생각하니, 그도 우리 사회의 한 희생자라는 생각도 들어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고. 시비지심을 떠나 측은지심이 앞서는 게 사실이네.

난 그분이 우리나라의 헌법 질서를 무시하는 발언을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 걸 보고 놀랐네. “의사가 돈 버는 게 뭐가 나쁜가.” 라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로 인술보다는 돈벌이를 중시하는 ‘실업가’ 의사여서 철저한 자유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전혀 민주시민교육을 받지 못한 천박한 속물이더군. 자기가 누구 때문에 돈을 벌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야. 정치의식은 더 엉망이고. 더 잘살게만 해준다면 독재나 왕정도 괜찮고, 심지어 플라톤의 전체주의적인 철인 정치마저도 옹호하고 있으니, 저런 분을 뭐라 불러야 하나? 새로운 종류의 수구꼴통이 맞는 것 같네. 그러니 저런 분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1조를 알 리가 없지. 일류 의대를 갈 정도면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 점수도 매우 높았을 게 확실한데 뭘 배웠는지…

“제 자식들은 지금까지 투표권이 없습니다. 나이가 안 찬 게 아니라 제가 못 하게 했어요. 국민의 4대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투표권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니 권리를 줄여야 한다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려 하면 ‘도둑놈 심보’라나. 이분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 사회적 ·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 1항도 모르는 엉터리 국민이네. 또 이분은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가 보네. 지금 우리 대통령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그분이 군대 다녀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온전한 사람 노릇도 못할 여자를 대통령으로 뽐은 우리 국민들은 뭐야? 누가 바보인지 헷갈리는군.

남들보다 머리도 좋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도 모르는 이유가 뭘까? 어렸을 때부터 민주 시민으로서 가져야할 자질을 획득하도록 돕는 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개인이 자신의 개인이나 계급의 이익 위에 전체 공동체의 선을 두는 능력을 ‘공화주의적 덕성’이라고 하는데, 저런 걸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었던가? 이런 덕성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닐세. 어렸을 때부터 시민교육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만이 이런 덕성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거라네. 또 이런 공화주의적 덕성을 가진 시민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이 고양되고, 권력자들이 자유와 공동선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래서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 함께 가야 중우정치와 독재정치를 동시에 막을 수 있는 거고.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의 유명한 민주주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가 공적 심성을 갖춘 시민(polities)과 사적인 삶을 선호하는 이기주의적 개인(idiotes)을 구별하면서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을 ‘해롭지는 않지만 쓸모없는 특징을 가진 사람’이라고 경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세.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2500년 전 그리스 시민들의 정치의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만 큰소리 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네.
  
마지막으로 그가 정치인 안철수를 평가한 방식으로 그를 평가하면서 마치고 싶네. “좋게 말하면 과대망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쟁이입니다. ‘가족에게 말도 안 하고 군대 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서 하는 걸 보면 ‘뻥’이 좀 심한 것 같아요.” 난 안철수가 과대망상 환자이고 거짓말쟁이인지 잘 알지 못하네. 하지만 내가 읽은 인터뷰의 주인공인 한 피부과 의사는 “좋게 말하면 과대망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수구꼴통입니다. ‘더 잘살 수만 있다면 왕정도 상관없다’,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저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을 잘 지키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라는 말들을 21세기에 그렇게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떠드는 걸 보면 망상(delusion)‘병’이 깊어도 꽤 심한 것 같다고 평가하고 싶네. 어렸을 때의 대통령 꿈을 일찍 접길 잘해서 고맙다고 말하고도 싶고… 만약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고 상상해 보게.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해지는군. 그땐 아무리 대한민국을 사랑해도 내가 떠나온 별나라로 돌아가야겠지?  

추신. 인터뷰에서 그 피부과 의사가 “밥 잘 먹고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피부건강엔 최고”라고 말했더군. 그런 식으로  인터뷰 해놓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는 게 괘씸하지만, 의사 말씀이니 새겨들어야지. 밥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사시게. 산에도 자주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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