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대림산업이 하청업체의 법인통장을 통해 돈거래를 하다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해당 하청업체 대표는 대림산업이 자사 통장에서 빼간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하청업체(에스와이건설)와 대림산업 측 주장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사건은 지난 201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소건설사인 ‘에스와이건설’은 당시 광구 광산구 일대에서 진행중이던 ‘호남고속철도 광주차량기지 건설공사’에 하청업체로 참여했다. 대림산업이 해당 사업의 시공사였고, 에스와이건설사는 현장에서 ‘종합관리동 외 12개동’의 가설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담당했다.

다만 대림산업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대림과 일반건축공사 도급계약을 맺은 ‘T건설’과 하도급계약을 맺는 형태로 이뤄졌다. 

◇ 대림산업의 은밀한 제안

공사는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광주차량기지 건설공사 중 차량검수고 공사를 맡았던 2개 업체가 경영위기로 인부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면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이들 2개 회사와 도급계약을 맺었던 대림산업은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이런 상황이 자칫 다른 작업 현장에까지 영향을 끼쳐 공사 전체에 타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대림산업은 ‘편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대림산업은 현장에서 정상적으로 공사를 진행중이던 T건설과, T건설의 하도급업체인 에스와이건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에스와이건설에 은밀한 제안을 건넸다.

T건설로부터 받은 공사비를 대림에 미리 융통해 달라는 것이 핵심. 그렇게 해주면, 나중에 T건설과 공사비를 정산할 때, 대림에서 사용한 비용을 반영(증액)해 처리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에스와이건설 이모 대표는 대림의 제안을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공사현장에서 철저한 ‘을’인 영세 건설사 입장에서 ‘슈퍼 갑’인 대형건설사의 제안은 사실상 명령이나 압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이 대표는 대림산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T건설은 에스와이건설에 지급해야 할 공사대금 중 일부를 에스와이건설 법인통장에 송금했다. 금액은 2억8,600만원. 그리고 대림산업은 이 중 2억6,300만원을 7차례에 걸쳐 인출해갔다. 돈은 에스와이건설 법인인감과 통장을 건네받아 대림산업 측이 직접 인출하는 형식이었다. 대림산업은 이렇게 손에 쥔 돈으로 공사현장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림산업을 믿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 사라져버린 2억6,000여만원

이 대표에 따르면 에스와이건설은 당초 2014년 7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기로 T건설과 공사계약을 맺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2012년 11월 8일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이에 에스와이건설과 계약을 맺은 T건설은 내용증명을 통해 그동안 시행한 공사대금 정산내역을 통보하고, 양사간 계약이 종료됐음을 알려왔다. T건설에서 보내온 타절정산공문서에는 이번 공사와 관련, 에스와이건설에 4차례에 걸쳐 총 8억6,570만원이 공사대금으로 집행됐다고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터졌다. 대림산업 측에 “법인통장에서 가져간 2억6,300만원을 변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대림 측은 오히려 “T건설에서 지급한 총 공사대금(8억6,570만원)에 그 돈이 포함돼 있다”고 답변한 것.

이 대표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분명, 공사가 끝날 무렵 정산금액에 반영(증액)하여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T건설에서 지급한 총 공사대금(8억6,570만원)에 2억6,300만원을 포함시켜 지급했다고 하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다.

A대표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에스와이건설은 T건설과 하도급계약을 맺었지, 대림산업과는 어떤 계약도 맺은 바 없는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쉽게 말해 8억6,570만원은 공사를 수행한 것에 대해 T건설로부터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공사대금이고, 2억6,300만원은 대림에서 우리에게 변제 해줘야할 별개의 돈이란 얘기다. 공사계약 당사자(T건설-에스와이건설) 간 공사대금 정산은 끝났는데, 왜 대림은 T건설에서 지급한 총 공사대금에 자신들이 가져다 쓴 2억6,300만원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대림산업은 우리에게 줄 돈을 T건설에 지급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얘기”라면서 “대림 주장대로라면 돈은 우리에게서 가져다 쓰고, 갚는 것은 다른 곳에 갚았다는 얘기 아니냐. 만약 대림이 T건설에 돈을 지급했다면 그것은 대림과 T건설간 계약에 따른 정산일테지, 우리 쪽에서 가져간 돈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A대표는 특히 “대림을 믿고 통장과 인감을 맡겼는데, 이제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니 이것이 ‘갑의 횡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면서 “T건설을 통해 돈을 지급할 거였으면 애초부터 T건설의 법인통장을 이용하면 됐을 일인데, 왜 우리 쪽 법인통장을 이용한 것인지 묻고 싶다. 영세한 하청업체를 이용해 비자금이라도 조성할 목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대림 “갑의 횡포 없었다. 우리도 억울”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림산업 홍보실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에스와이건설 법인통장을 통해 임금체불건을 처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에스와이건설 법인통장에서 빼 쓴 2억6,300만원은 이미 T건설을 통해 정상 지급됐다. T건설이 에스와이건설에 정산한 총 공사대금에 그 돈이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림산업 측은 우선 하청업체 법인통장을 통해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한 것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대림은 “임금체불로 현장이 시끄러워지면 에스와이건설도 정상적으로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활한 작업 진행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임금체불 문제로 시끄러운 2개 업체가 정식 ‘부도’가 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림이 직접 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결국 T사와 에스와이건설, 대림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 하에 결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와이건설 측 주장처럼 일방적으로 ‘법인통장을 내놓으라’며 대기업의 횡포를 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림산업은 또 “현재 에스와이건설 측은 T건설이 지급한 8억여원의 총 공사대금이 자신들이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말하는데, 실제론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하고 중간에 공사를 중단한 만큼 8억이 아니라 약 5~6억 정도밖에 일을 못한 셈”이라면서 “결국 약 6억원 정도의 공사대금에 대림이 T건설에 지급한 돈(2억6,000여 만원)이 합산돼 총 8억여원의 공사대금이 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림 측은 그러면서 “우리 입장에서도 돈이 이중으로 나간 것이어서 억울한 상황”이라면서 “현장 임금체불건을 해결하기 위해 돈이 나가고, 에스와이건설에서 사용한 돈을 처리하기 위해 또 돈이 나간 셈이다. 에스와이건설과 원만한 협의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달라 우리로서도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에스와이건설 이 대표는 ‘호남고속철도 광주차량기지 건설공사’ 발주자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에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에 대림과 공단, 에스와이건설 등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여러차례 간담회를 열었지만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 대표는 최근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도 민원을 제기했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1인시위는 물론 언론과 정치권에도 관련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영세 하청업체의 법인통장을 통해 거래된 2억6,000여만원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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