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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⑬ '극장정치'의 본질
[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⑬ '극장정치'의 본질
  • 시사위크
  • 승인 2014.03.31 11: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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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자네 혹시 극장정치라는 말을 들어봤나? 극장에서 하는 정치냐고?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틀린 말은 아닐세. 그 ‘극장’이 우리가 영화를 보는 극장이 아니고, 전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공짜로 볼 수 있는 TV인 게 다르지만, 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원래는 일본 언론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정치 형태에 붙인 이름이었지만, 요즘 우리 대통령이 열심히 일 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자주 생중계로 등장하는 게 한국판 ‘극장정치’를 보는 것 같아서 물어봤네.

며칠 전 지상파와 종편 등을 통해 장장 7시간 동안이나 전 국민들에게 생중계된 규제완화 점검회의는 보았겠지? 나에게는 대통령이 혼자서 기획 · 연출하고 완벽하게 연기한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이더군. ‘암 덩어리’ 같은 규제 때문에 일반 국민과 관이 서로 맞서는 상황을 먼저 설정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신속하게 해결해주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에게 해결사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완벽한 드라마였지. 대통령이 선택한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선명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 여론몰이를 하려고 기획한 이벤트 정치, 그게 바로 극장정치지. 멋있다고? 그런데 문제는 극장정치가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정치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있네. 그런 드라마에서 일반 국민들은 들러리를 서거나 구경만 할 수 있을 뿐이지. 그런데도 그 드라마를 보고 감격하는 국민들이 많았으니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것 같네.

그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확신한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규제 완화 또는 철폐가 마치 ‘지금 여기’의 시대정신이나 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있네. 대통령이 나서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 “우리 몸을 자꾸 죽여 가는 암 덩어리”라고 규정하고, 규제개혁을 하지 않는 행위는 “자나 깨나 일자리를 갖고 싶어 하는 국민 소망을 짓밟는 죄악”이라고 말했으니, 보수 세력들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지는구먼. 그렇다면 그런 암 덩어리가 퍼질 때까지 우리 대통령과 여당은 무엇을 하셨는지? 지난 50여 년 동안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빼고 이 나라를 지배한 세력이 누구인가? 그리고 죽어도 바른 말만 한다는 보수언론들이 이 사회의 여론 형성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던 게 사실 아닌가? 그런데도 원수 같은 암 덩어리가 1만5000 개나 있다면, 그들 모두 직무유기한 꼴인데, 이제와 뭐가 잘 났다고 떠들고 있는지… 만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규제가 아직도 그렇게 많이 남아 있다면,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배해온 자신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참 어이가 없네. 자가당착도 유분수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 아닌가?

정말 모든 규제가 다 원수이고 암 덩어리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규제는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시장실패)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서 만드는 법률이나 조례 등이지. 만약 독과점방지법이 없다고 생각해보게나. 아마 대한민국은 이미 ‘삼성왕국’이나 ‘현대공화국’이 되었을 거네. 또 규제에는 안전이나 환경처럼 국민의 삶의 질을 보호하고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들도 많다네. 모든 규제가 다 나쁜 것은 아니야. 물론 처음에는 정당한 필요에 의해 생겼지만 제반 환경이 변하면서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들도 있지. 예를 들면, 뷔페식당의 빵은 반경 5km내에 있는 제과점에서 만든 빵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제처럼. 물론 그런 규제들은 없어져야지. 하지만 모든 규제가 다 나쁜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는 것은 더 나쁜 짓이야. 사실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규제가 더 많거든.

규제는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쁜 것도 아니며, 규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과 피해를 보는 집단이 분명히 있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감수할까를 결정하는 게 정치이지.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는 대기업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자본의 힘이 강해지면서 오히려 자본에게 짐이 되었던 규제들도 많았다네. 자본이든 사람이든 자신의 힘이 커지면 누가 간섭하는 게 싫지. 그래서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규제 완화나 철폐를 계속 주장했네. 지금 정부에서 규제개혁을 외치는 이유도 결국 자본의 활동을 자유롭게 해줌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믿음 때문이네. 그런데 정말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길까? 나도 그러길 바라기는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또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한 특징인 것을 왜 그들은 모르는지…

정부의 간섭이 없으면 가장 좋은 사람이나 집단은 누굴까? 물론 돈이 많은 사람들이지.  언론이나 소속 연구기관을 통해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하던 재벌들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규제 개혁을 다그치자 신이 나서 자신들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의료와 교육 부문에서의 규제가 제대로 완화되면 20만개가 창출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더군. 국민들의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의료와 교육마저도 다 시장논리에 맡기자는 거지. 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부처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유해 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을 학교 근처에 설치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여수 산단 녹지를 공장용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신규 환경 규제를 도입하기 전에 기업인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는군. 이런 게 극장정치의 병폐라네. 모든 규제는 이해당사자가 얽혀있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의 말을 충분히 듣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는 등 체계적인 절차에 따라 차근차근 논의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풀어라’ 한다고 부랴부랴 다 부풀면 어떻게 되겠는가? 

1997년 말에 있었던 외환위기, 2003년의 카드 사태,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는 모두 성급한 규제 완화에서 출발했다는 걸 알아야 하네. 지금 다시 세차게 불고 있는 규제 완화의 광풍이 어떤 비극의 씨앗을 이 땅에 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네. 규제 완화나 철폐로 인한 위기가 발생하면 고통을 받는 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지금 그 광풍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힘없는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네. 영화가 끝난 다음에 속았다고 외쳐본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쌍방향 의사소통이 대세인 21세기에도 일방통행 극장정치를 봐야 하니 답답하네. 우리 카톡에서 만나 실컷 욕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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