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현대건설이 또 담합 사건에 이름을 올렸다.

1월 ‘인천도시철도 2호선 입찰 담합’에 이어 3월 ‘대구도시철도 3호선 입찰 담합’, 그리고 최근 ‘경인운하 입찰 담합’ 사건까지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정말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짜고 친 고스톱’의 수준이 도를 넘었다. 만약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하면 소름이 끼친다.

현대건설이 이름을 올린 담합 사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으로 국민들을 속여 왔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마치 정정당당하게 입찰에 참여한 것처럼 발표해놓고, 뒤에선 여러 개의 건설사별로 역할을 분담해 한편의 영화처럼 ‘합’을 맞춰온 것이다.

이 완벽한 영화에는 선두그룹 대형 건설사들이 주연을 맡고, 중견건설사들이 조연, 나머지는 들러리를 섰다. 들러리 건설사들은 설계를 부실하게 해 점수를 고의로 낮추고, 설계사는 용역비의 상당액을 비자금으로 사용했다. 이들이 각자 위치에서 펼친 연기력은 그야말로 ‘대종상’ 감이다.

공정위가 현대건설을 비롯해 담합사건에 연루된 건설사들에 과징금을 물리고 검찰 고발까지 나섰지만, 못된 버릇을 고칠 수 있을 지 회의적이다. 수백억 규모의 담합 과징금을 아무리 때려봤자 이들이 담합으로 얻은 이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이 챙긴 이득은 대부분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건설은 다른 건설사들에 비해 잘못을 더 크게 꾸짖어야 한다.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의 ‘맏형’이자 ‘업계 1위’이기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윤리적·도덕적 잣대에서 예외일 수 없는데다, 최소한 ‘업계 1위’로서 ‘모범’은 돼야하는 것이 기업의 당연한 사회적 책임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현대건설의 이런 행위는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없는 구도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난 받아 마땅하다. “불굴의 의지로 이뤄낸 신화”라고 자사를 홍보해오던 것을 고려하면 현대건설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더욱 부끄러워해야 한다.

시장의 질서를 주도해야 할 선두그룹이 되레 담합을 주도하고, 그렇게 따낸 공사에서 공사비를 부풀려 뒷돈을 챙기고, 협력업체까지 쥐어짜 지금까지의 영광을 쌓은 것이라면 현대건설의 신화는 피와 땀,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역사가 아니라 ‘짜고 친 고스톱’으로 만들어낸 ‘오명의 역사’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자칫 ‘1,000억달러 해외수주 신화’까지 퇴색시키는 먹구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담합’ 사건으로 현대건설이 이룬 모든 명성과 영광을 매도해선 안된다고 반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첨단 기술로 지어진 고층빌딩도 결국 나사 하나, 볼트 하나의 결함으로 무너질 수 있다. 기술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본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상태를 강조하는 것이다. 현대건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다른 도전과 개척정신’이라는 현대 정신의 근간을 잊지 않았다면, 법 아래 무서울 것 없이 전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지난 1월 22일. 현대건설은 정수현 사장 이하 임직원들이 모여 준법경영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시장경쟁 질서를 존중하고 사회 책임경영 및 투명경영을 적극 실천해 ‘글로벌 리딩 건설사’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공정한 거래문화 정착 ▲부당 공동행위 근절 ▲동반성장 문화 조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준수와 같은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했다.

특히 이날 정수현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준법경영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으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회사가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를 잃게 되고, 한 번 신뢰를 잃은 기업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현대건설은 공정거래 및 준법경영을 실천해 국민과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1등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현대건설의 부끄러운 민낯이 공개된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지켜봐야 할 지는 현대건설에 달린 셈이다.

▲ 지난 1월 22일, 현대건설은 정수현 사장을 비롯해 팀장급 이상 임직원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법경영 실천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 ▲공정한 거래문화 정착 ▲부당 공동행위 근절 ▲동반성장 문화 조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준수와 같은 준법경영 실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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