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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이형운 발행인] 지금처럼 촘촘하게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상피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가족이나 친족이 같은 관청에 근무 할 수 없게 했고, 서로 연관 있는 직책 등에 아는 사람이 근무하지 못하도록 했다. 특히 시험감독이나 송사(訟事)를 다루는 문제에서 지인(知人)과 관련되지 않도록 한 게 이 상피제의 취지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기관인 영의정은 말할 것도 없고 사헌부 등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일수록 엄격하게 상피제를 적용했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고향이나 연고지에 아예 발령을 내지 못하도록 했다.

상피제의 기원은 고려 선종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유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 더욱 엄격하게 적용됐다.

상피제가 실시된 근본 취지 가운데 하나가 ‘끼리끼리’ 뭉쳐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억울한 백성이 한명이라도 나오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제도가 상피제인 셈이다.

지난 2004년 들어 우리나라 법조계는 ‘향판제’를 도입했다. 전국 법원을 순환 근무하지 않고 본인이 희망하면 서울을 제외한 대전, 광주, 부산고법 관활지역 법원에서 근무하는 지역법관제도가 향판제다. 잦은 인사이동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오랜 근무로 지역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신뢰 높은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향판제는 법관들이 지역유지들과 유착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최근 불거진 ‘황제노역’의 주역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판결도 ‘향판제’가 낳은 부작용이다. 허 전 회장은 일당 5억 원짜리 판결로 논란을 일으켰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받은 일당이 5만원인 사람들에겐 허탈해도 너무 허탈한 판결이다. 하루 종일 고생해서 받은 5만원을 차곡차곡 모아 자식들 교육시키고, 그러고도 남은 돈이 있으면 방한 칸 더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서민들에겐 ‘일당 5억’이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봄직한 상상 속의 액수일 뿐 서민들과는 무관한 판결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노철래 의원은 이번 판결을 내린 장병우 전 광주지방법원장의 사표 수리 과정과 관련해 “감찰부터 실시해서 사실관계를 확실히 파악하고 난 뒤 사표를 수리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대주그룹 계열사와의 부당한 아파트 매매 등의 논란을 빨리 덮고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박병대 법원 행정처장은 장병우 전 광주지방법원장의 아파트 거래에 대해 “직무와 관련된 비리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장 전 광주지원장을 감싼 듯한 발언을 했다.

국민들 입장에선 속 터질 대답이다. 직무와 연관된 아파트 공여하는 점을 국민들은 심정적으로 확신하고 있는데도 ‘직무와 연관 없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을 정부 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니 더 더욱 국민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하루 5만원 일당 인생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가슴을 뻥하고 뚫어줄 답변을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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