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PC(컴퓨터) 수리비가 예상외로 많이 나왔던 경험이 있는가. 혹은 생각지도 않았던 고장이 발견돼 수리비를 지불했던 경험은? 만약 그렇다면 이들 ‘PC수리 사기단’에 걸려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 PC수리업체의 불편한 진실

컴퓨터 수리를 빙자해 고객들로부터 돈을 뜯어낸 일당이 적발됐다. 이들은 수리를 맡긴 고객의 컴퓨터를 일부러 더 고장 낸 뒤 수리비를 청구하는 방식으로 수십억을 챙겼다.

사건의 중심에 선 곳은 ‘PC119’.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에 위치한 이 업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컴퓨터 수리 분야에서 국내 1~2위를 다툴 정도로 유명한 곳으로, 지난해 매출만 5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일당의 수법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부품 교체를 하지 않고 부품비를 허위로 청구하거나, 컴퓨터 부품단자를 송곳으로 찔러 손상시킨 뒤 부품비를 청구하는 수법을 썼다.

의도적으로 악성 코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수리를 요청한 컴퓨터에 부팅 방해 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인데,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MBR위저드’라는 악성 프로그램을 사용해 부팅을 담당하는 C드라이브를 삭제한 뒤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MBR’는 컴퓨터 부팅 시 필요한 정보를 저장하는 장소로 훼손될 경우 부팅이 되지 않는다. 피의자들은 소비자의 컴퓨터에 이 같은 악성코드를 심은 뒤 데이터 복구 비용을 받아 챙겼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 직원이 조직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에 ‘PC119’를 차려놓고 △콜센터 △경리 △A/S 내·외근팀 등을 구성해 조직적으로 범행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대표가 직접 ‘사기’ 수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대표가 수리팀장에게 “컴퓨터 부팅 방해 프로그램을 실행해 데이터 복구 비용을 청구하라”고 지시했고, 팀장은 수리기사들에게 해당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방식이었다. “눈치껏 고객을 속이라”는 주문도 버젓이 이뤄졌다.

◇ 9개월간 21억 챙겨…

경찰 조사에 따르면 수익은 회사와 수리기사가 5대5에서 6대4 비율로 나눠 가졌다. 일당 가운데는 월 1,300만원의 고수익을 올린 기사도 있었다고 한다. 수리기사들은 수리비를 더 받기 위해 개인정보가 담겨있는 병원진료 내역과 가족사진 등을 훼손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힌 66명 가운데 ‘PC정비사’ 등 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학과를 전공한 사람도 3명에 불과했다. 이들의 근무경력은 대부분 1~3년이었다.

이런 수법으로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이들이 챙긴 돈은 대략 21억6,000여만원이다. 피해자만 1만300명. 일반 가정집부터 학교, 병원에 이르기까지 업종과 대상을 가리지 않은 탓이다.

이에 서울 수서경찰서는 고객이 수리를 요청한 컴퓨터에 부팅 방해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데이터 복구 비용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 등)로 전 컴퓨터 수리업체 대표 이모(31) 씨 등 4명을 구속하고, 현 대표 정모(34) 씨 등 62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컴퓨터 수리업체 사이에 이런 수법이 널리 퍼져 있다는 피의자들의 진술에 따라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면서 “컴퓨터 수리를 맡길 때에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부품 명과 가격 등 사전정보를 숙지하고 여러 업체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