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8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인문학 콘서트 ‘지식향연’에 강연자로 나섰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8일 오후 5시, 연세대학교 대강당은 몰려든 학생들로 북적였습니다. 신세계그룹이 준비한 인문학 콘서트 ‘지식향연’이 첫 선을 보이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말끔한 회색 수트에 노타이 차림으로 학생들 앞에 등장했습니다. 정 부회장이 ‘지식향연’의 첫 강연자로 나선 것입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안녕들하십니까”로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적잖은 경쟁률을 뚫고 강당에 초대된 학생들은 뜨거운 박수와 플래시 세례로 화답했습니다. 이후 정 부회장은 차근차근 그가 청춘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조언들을 풀어나갔습니다.

인문학 콘서트인 만큼 정 부회장은 인문학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삼성 갤럭시S5를 꺼내 보이며 “여기에도 본질적인 인문학적 통찰이 반영돼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또한 스펙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고, 신세계 역시 그런 인재를 뽑겠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에 대한 위로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쳐있는 청춘이 안쓰럽다”며 “그 부분에 대해선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재치 있는 농담과 진지한 조언이 섞인 정 부회장의 강연에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경청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고, 또 닿고 싶은 사람일 수 있는 정 부회장의 강연은 뜨거운 호응 속에 예정보다 1시간이나 더 지나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재벌 오너이자 경영인이 ‘멘토’로 변신한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고, 긍정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날 정 부회장이 한 말 중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전파에 나선 것은 신세계그룹의 경영이념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많이 읽어야한다. ‘레미제라블’을 읽으면 스토리보다 장발장이 느낀 절박함, 죄책감 등의 감정을 곱씹어야 한다.”

정 부회장은 직접 시를 낭송하기도 했는데요,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리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 ‘대추 한 알’>

이 시와 함께 정 부회장은 “대추가 몇 개 열렸는지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대추가 맛있게 익기 위해 어떤 갈등과 고뇌와 외로움이 있었는지 보아야 한다” 며 “껍데기가 아닌 본질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 부회장이 ‘지식향연’ 강연에 나서기 하루 전인 지난 7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이마트 노조탄압과 관련된 재판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마트는 신세계그룹의 핵심 계열사이고, 노조탄압이 이뤄진 기간에 정 부회장은 이마트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날 재판에서는 그동안 부분적으로 드러났던 이마트의 치밀하고 잔혹한 노조탄압이 큰 그림으로 완성됐습니다.

검사가 증거자료로 제시한 이마트의 문건은 과연 민주주의 시대가 맞는지조차 의심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노조와의 충돌을 유도하기 위해 모욕적인 폭언을 퍼붓고, 심지어 자녀까지 들먹인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었습니다.

다시 정 부회장의 강연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신세계그룹의 경영 중심에 ‘사람’이 있다’, ‘장발장이 느낀 절박함, 죄책감 등의 감정을 곱씹어야 한다’, ‘대추가 맛있게 익기 위해 어떤 갈등과 고뇌와 외로움이 있었는지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과 이마트의 노조탄압은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정 부회장은 이번 이마트 노조탄압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노조탄압은 있었지만 이를 지시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가 몰랐을지 의문부호가 붙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1월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과의 인터뷰 때 들었던 말이 떠오릅니다.

“자신이 말한 그 말을 꼭 지켜 달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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