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이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지난 28일 오전, 서울지방법원 418호 법정엔 고요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지난해 세간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이마트 노조탄압 관련 재판의 결심공판이 진행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노조탄압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병렬 전 대표와 윤모 전 인사담당 상무, 직원 임모 씨, 이모 씨, 백모 씨 등 5명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재판장에 들어와 피고인석에 차례로 앉았다.

언론보도와 문건폭로, 검찰 수사 등으로 이마트의 노조탄압 실태가 많이 전해졌지만, 공판 과정에서도 그 충격은 계속됐다.

지난달 17일 열린 2차 공판에서는 이른바 ‘노조 프락치’의 양심고백이 나왔고, 지난 7일 열린 3차 공판에서는 각종 문건과 검찰의 수사결과를 통해 이마트 노조탄압의 큰 그림이 완성됐다.

그리고 이어진 4차 결심공판. 이날의 핵심은 피의자 심문이었다. 검찰은 최 전 이마트 대표와 윤 전 상무에 대한 심문을 진행했다.

이미 이마트 노조탄압의 전모가 드러난 상황에서 쟁점은 대표이사와 고위 임원이 어느 선까지 노조탄압에 인지하고 개입했는지 여부였다.

◇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 “나는 몰라요”

검찰이 주목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노조탄압 문건, 노조탄압 내용이 담긴 임원 정성평가 문건, 프락치와 온갖 수법을 동원한 노조탄압 행위다. 검찰은 각각에 대해 최 전 대표와 윤 전 상무가 얼마나 개입했는지 집중 추궁했다.

윤 전 상무는 우선 노조탄압 문건과 이와 관련된 회의 일체를 인정했다. 그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사회적으로도 우려가 컸다”며 “혼란 예방을 위해 노조 대응 지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전 대표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 전 대표 역시 “노조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인사담당 임원이 실무자로서 관심을 갖고 준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인사부문의 중대한 변화라 할 수 있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인사담당 상무가 대응 지침을 대표이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회사의 조직체계를 생각하면 쉽게 납득이가지 않는 설명이다.

석연치 않은 답변은 임원 정성평가 부분에서도 이어졌다. 정성평가는 수치로 확인하기 힘든 업무 목표에 대해 임원이 자신을 평가하고, 대표이사가 이를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검찰이 제시한 윤 전 상무의 정성평가 문건에는 각종 노조탄압 내용이 담겨있었다. 업무 목표 및 평가 항목에 버젓이 노조탄압 내용이 기재돼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 전 상무는 검찰이 제시한 자신의 업무 목표 및 평가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모른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하위 부서와 직원들이 작성한 것이라 자세한 내용은 일일이 몰랐다고 설명했다. “부끄럽지만…”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 지난해 2월 이마트 노조탄압 의혹과 관련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이마트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한 모습.

최 전 대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임원을 평가해야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 임원의 업무 목표와 평가표는 자세히 몰랐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의 말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내용을 모르고 어떻게 평가하나”라고 지적하며 “윤 전 상무의 2012년 중요 평가 사항은 무엇이었나”라고 묻기도 했다.

최 전 대표가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슬림화와 인력재배치를 통한 효율 증대였다”라고 답하자 재판부는 “그런 내용은 통상적인 것 아닌가.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특수한 사정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나”라고 재차 물었다. 최 전 대표는 “경영이 악화된 상황에서 생기지도 않은 노조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고 답했다.

노조 프락치에 관계된 일과 미행 등 실제 노조탄압 행위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답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윤 전 상무는 일부분만 인지 및 지시했다고 인정했고, 최 전 대표는 더욱 일부만 보고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판부는 노조 프락치에게 정보를 받고 명예퇴직금을 지불한 것에 대해 집중했다. 재판부는 최 전 대표에게 “노조 관련 정보가 어느 수준이길래 별도로 보고까지 받아 프락치를 명예퇴직 조치 시켰느냐”며 “회사의 비용이 들어가고 노조와 관계된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정보의 수준이나 내용, 신빙성에 대해서 확인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에 최 전 대표는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못했다. 회사에 도움을 주었다고 가볍게 생각했고, 윤 전 상무의 판단에 맡겼다”라고 답했다. 대표이사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와 답변이었다.

▲ 이마트의 노조탄압 문건. 전수찬 노조위원장의 1인 시위에 대한 대응지침과 입소문지침이 담겨있다. 구체적인 멘트까지 자세히 나와 있으며, 모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 알았어도 문제, 몰랐어도 문제, 변하지 않아 더 문제

이처럼 최 전 대표와 윤 전 상무는 줄곧 노조탄압 연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특히 최 전 대표는 윤 전 상무의 업무 목표와 내용, 평가표도 모른 채 평가를 했다고 밝혔다. 윤 전 상무 역시 자신의 업무 목표와 평가표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두 사람의 답변에 검사는 헛웃음을 지을 정도로 황당해했다. 재판부 역시 이해가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들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최 전 대표와 윤 전 상무는 계속되는 추궁에 수차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윤 전 상무는 ‘노조’ 담당임원이 아닌 인사부문 전체를 담당하는 임원이었다. 최 전 대표 역시 30여명에 이르는 임원을 아우르는 대표이사였다. 이들의 업무에서 노조는 일부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문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윤 전 상무의 업무목표와 평가표에는 분명히 노조탄압 관련 내용이 명시돼있었다. 더욱이 이 문건의 내용은 대부분 현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이사.

최 전 대표와 윤 전 상무가 정말 몰랐다고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일반 직원에서부터 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은 지시받지 않았음에도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고, 윗사람은 그것도 모른 채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의 조직체계가 동네마트보다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노조탄압 행위가 이뤄졌을 당시 이마트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자유롭지 않다.

검찰은 “이들의 진술 태도를 보면 명확한 증거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반성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 물증이나 진술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출한 증거로 피고인들의 혐의가 입증되고, 공모관계도 인정된다”며 최 전 대표와 윤 전 상무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최 전 대표는 최후진술에서 “물의를 빚어 송구스럽다”며 “그동안 회사는 사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 지난해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미흡한 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최 전 대표 측 변호사 역시 “해고자가 복직됐고, 관련된 고소도 모두 취하됐다. 해외에서는 형사처벌보단 원상복귀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강조했다.

▲ 지난해 1월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노동인권 탄압 신세계·이마트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민주노총.

하지만 최 전 대표 측의 말과 현실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은 “노조탄압 관계자에 대해 회사는 별다른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 함께 기소된 백모 씨는 첫 공판 3일 전에 승진까지 했다. 이는 곧 이마트가 여전히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노조탄압 혐의로 기소돼 1년 6개월을 구형받은 최 전 대표만 봐도 현재 이마트 고문에 올라있다.

노사관계 역시 지난해 4월 이후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마트 노조는 지난 22일 교섭결렬을 선언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전 위원장은 “이마트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노조활동 방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전 대표를 비롯한 5명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5월 30일 열린다. 이마트 노조 측은 “검찰의 1년~1년 6개월 구형은 대기업의 노조탄압에 대해 너무 관대한 처벌이 아닐 수 없다”며 “재판부는 이들에게 실형을 내려 노조에 대한 사측의 불법행위는 반드시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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