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로 인한 충격과 슬픔으로 온 국민이 일상적 소비생활과 경제활동을 자제하면서 내수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40대 회사원 김현석(43․경기도 광주) 씨는 최근 지인들과의 술자리(모임)는 물론 가족들과의 봄나들이 계획도 모두 취소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검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무고한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먹고 마시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다.

 

황금연휴를 맞아 3박4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준비했던 한연수(25․여․직장인) 씨도 일정을 모두 접었다. 유일한 낙이었던 ‘쇼핑’과, 아무리 비싸도 꼭 챙겨먹던 커피 역시 끊은 지 오래다. 한씨는 화사한 봄옷을 구입하는 대신 세월호 희생자 가족돕기 모금에 후원금을 보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범국민적 애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해 전국민이 슬픔에 빠진 가운데, 이젠 웃고 떠드는 일이 ‘민폐’가 돼버렸다. 특히 깊어지는 슬픔에 ‘안 먹고, 안 쓰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소비심리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이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추모 열기 속에 국민들이 외부 활동을 크게 자제하면서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 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일단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여행 성수기인 5~6월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항공업계와 여행업계, 숙박업계 등에선 그야말로 ‘비상’이다. 황금연휴 기간 특수를 기대했던 이들로선 긴급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여기에 정부의 방침으로 각 학교의 수학여행까지 금지되면서 여행업계는 속이 새까맣게 타고 있다.

 

외식업계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장인들의 귀가 시간이 빨라지면서 모임 분위기도 바뀌었다. 식당 저녁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는가 하면, 만취자들로 가득하던 주말 저녁 유흥가도 썰렁해졌다. 노래방을 포함해 주로 심야 시간대를 중심으로 영세한 사업장들은 연쇄 타격을 입고 있다. 야간 택시도 손님이 끊긴 지 오래다.

각 기업들도 신상품 출시를 미루고 있고, 판촉 마케팅 역시 자제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어린이날․어버이날 등 기념일을 비롯해 온갖 축제로 인해 내수업계가 활기를 띌 시기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유통업계에 따르면 봄 정기세일 대목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1.5% 가량 줄었고, 현대백화점의 매출도 1%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 활동이 어느 정도나 위축 됐는지는 개인 카드이용액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직후 일주일 동안 대형카드 3사 고객들의 이용 실적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3.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내수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 이대로는 안된다… ‘내수회복’이 중요

28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분석 결과, 지난해 3분기 전기 대비 1.0% 증가했던 민간소비는 지난해 4분기 0.6% 증가에 이어 올해 1분기 0.3% 증가에 그쳐 2분기 연속 둔화됐다. 설비투자도 전분기 5.6% 증가에서 올 1분기 1.3% 감소로 돌아섰다. 여기에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한 소비 자제 분위기 속에 기업의 각종 행사 및 마케팅활동 취소 등이 속출하면서 국내 소비 위축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내수 침체가 우리 경제 전체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내수 시장의 워낙 미약한 상태에서 ‘세월호 트라우마’에 따른 소비 위축이 길어지면 경기가 다시 급락하는 것은 물론, 자칫 장기불황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월호 참사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은 유통이나 관광․숙박․외식 등 내수 시장이다.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들과 달리 내수경기에 목을 매고 있는 이들 업종들은 내수 위축이 장기화되면서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소비 부진이 이어지면 영세한 일부 업체들의 줄도산은 장담할 수 없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내수 회복의 동력은 결국 ‘소비’와 ‘투자’에서 나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사태 수습과는 별개로 이제 우리 사회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돌릴 때가 됐다고 조언한다. 너무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되면 서민의 삶이 어려워진다. 소중한 이들을 잃은 슬픔과 비통함은 충분히 이해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경제활동은 불가피한 선택이자,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 지난 4월 24일, 정영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이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2014년 1/4분기 실질국내총생산 속보치 브리핑에서 '세월호' 침몰이 국내 내수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 잠시 발언을 멈추고 울먹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경제 관련 부처들은 내수를 끌어올릴 방안을 조심스럽게 꺼내야 할 때다. 물론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서 어설프게 내수 진작책을 꺼내들 경우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더는 늦출 수 없다. 앞으로 있을 개각으로 경제부처 수장들이 바뀐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개혁, 공기업 혁신 등 현 정부가 약속한 경제 정책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더불어 정부와 경제 주체들은 설비투자를 늘릴 방안을 강구해 경기 침체를 막는 일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조금씩 회복 조짐이 보이는 부동산 경기가 다시 꺾이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도 중요하다. 기업들 역시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는 국민들은 참으로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그 어둡고 차디찬 바다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와 슬픔은 한동안 쉽게 거둬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민경제를 가라앉히고 대한민국 경제까지 좌초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이들,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희망이자,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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