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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⑯-탐욕이 부른 세월호 참사
[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⑯-탐욕이 부른 세월호 참사
  • 시사위크
  • 승인 2014.05.12 11: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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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난 마음이 심란하거나 우울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읽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정신도 맑아지지. 농담이지만, 가끔 내가 부자라는 생각을 한다네. 아마 개인이 갖고 있는 책과 클래식 CD로만 순위를 매기면 우리나라 가구 중 상위 5% 안에는 충분히 들고도 남을 걸세. 세월호가 침몰한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네. 유난스럽게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강조하던 정부의 무능력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고 화만 나는구먼. 그러니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음악과 시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밖에…

아직도 이런 후진적인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세월호 침몰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핵심은 건드리지 않는 것 같더군. 세월호가 작년 1월에 구조변경을 할 때 한국선급이 권고한 사항을 지키지 않고, 화물은 4배 더 싣고, 평형수(平衡水)는 적정량의 4분의 1 가량만 채웠다 하는군. 규정보다 화물은 더 싣고 평형수는 덜 실었으니 아무리 유능한 선장과 선원들이 있다고 한들 배가 제대로 항해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선박직 선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으니 그런 상태로 운항을 하면 자신들의 생명도 위태롭다는 걸 알면서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난 이번 사고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지난 삼사십여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황금만능주의라고 생각하네. 안전 규정을 어겨가며 화물을 과적하면서도 비정규직 선원들을 고용하여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고 한 자본의 탐욕이 배를 바다에 침몰시킨 거라고 믿네.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賣春婦(매춘부)라 불러도 되겠다/ 黃金(황금) 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權能(권능)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買淫(매음)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十字架(십자가)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신)의 오렌지 쥬스를 줄 것인가.” 최승호 시인의 <자동판매기>의 일부일세. 이번 사고의 충격이 너무 커서 자본주의라는 함정에 깊이 빠진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구먼.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우리들의 영혼마저도 삼켜버린 사회에서 내가, 아니 우리 자식과 손자 손녀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네.

우리는 왜 돈이 없으면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고, 돈이 모든 관계를 지배하고 왜곡하는 야만적인 사회를 갖게 되었을까? 우리 어른들은 왜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우정도 사랑도 구원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의 끈끈한 혈육의 정마저도, 돈이 없으면 얻기 힘든 세상을 만들었을까? 과거에 무슨 짓을 했건 세속적으로 성공하여 돈만 많이 갖고 있으면 용서가 되는, 심지어 그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고 대통령도 되는, 몰상식한 사회를 누가 왜 만들었는가? 그러고도 우리가 40-50년 전보다 더 발전한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많은 문제들이 박정희식 근대화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문제시하지 않았던 돌격적인 근대화 추진 방식의 부정적인 결과가 딸이 대통령인 지금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니… 이런 것도 인과응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몰라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빛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중략) … / 내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지팡이로 세상을 짚어가는 눈먼 이의/ 언 손 위에 가만히 제 장갑을 벗어놓고 와도/ 손이 따뜻하던 착한 시인 외면하고/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도종환 시인의 <내 안의 시인>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네. 난 돈이 지배하는 야만적인 사회에 살면서도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다'는 말을 아직도 믿고 있네. 다만 우리들이 지금처럼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물질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자본주의적인 근대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어린 시절부터 학교나 텔레비전 등 다양한 사회화기관을 통해 배워 내면화한 게 물질적인 가치뿐이니, 어린이고 어른이고 돈이라는 물신을 숭배하고, 다른 생명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착취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거지. 게다가 자연마저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개발 대상으로만 여기도록 배웠으니 생명을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외경심이 싹틀 여지가 없지.

세월호 사고 이후 대형 사고의 원인과 예방책들에 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지만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들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도 된다네. 길가에서 자라고 있는 제비꽃이나 애기똥풀을 보면 달려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순수한 마음, 즉 ‘내 안의 시인’을 되찾고,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지심이 저절로 솟아나는 인간성의 회복 없이 과연 안전한 사회를 가질 수 있을까?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의식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다시 회복하지 않고도 사고가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보네. 우리가 좀 더 덜 먹고 불편하게 살더라도 돈이나 경제 등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미국의 정치학자인 잉글하트(Donald D. Inglehart)가 탈물질적이라고 규정한 가치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삶의 혁명 없이는 세월호 침몰과 같은 사고,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물론 나만의 어리석은, 정말 어리석은 기우이길 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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