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모든 '사건'은 일어날 만하고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날 필요가 있고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일어난 것일세. 따라서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는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네. 그러니 자네가 할 일은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있는 근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성찰하고 의식 수준을 높여 영혼을 진화시키는 쪽으로 활용하는 것뿐일세.” |

내가 요즘 사진 공부하러 다니는 건 알고 있지. 그 수업 시간에 과제로 소개받은 이현주 목사의 ‘사랑 아닌 것이 없다’에 있는 글인데, 세월호 참사 후 자주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그려. 청진해운과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들어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과 구조과정에서 들어난 정부의 무능만 봐도 세월호는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는 거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성찰하고 실천할 때인가 보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들에 대한 천착이 필요할 걸세.

이번에 많은 국민들은 공공성이 완전히 실종된 세월호 재난 현장을 보고 놀랐을 것이네. 민간 잠수부들이 구조를 위해 현장에 있었지만 그들은 큰 역할을 할 수 없었네. 해경 산하 법정단체인 ‘한국해양구조협회’의 회원사인 ‘언딘마린인더스트리’가 구조 작업을 독점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네. 해경 관계자는 “구조나 수색 이런 점에선 오히려 민간이 실력이 낫다.”고 말하며 스스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음을 드러냈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해경이 비용과 예산절감을 이유로 구조 작업을 이미 사기업에 이양했기 때문이네. 이번 사고를 통해 국민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이념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네.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있는 게 국가인 줄 알았는데, 이미 국가 기능의 상당 부분들이 시장에게 넘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네.

우리 사회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인해, 미국처럼, 치안, 소방, 국방과 안보, 도로, 식량, 의료, 교육, 공기와 물 등 국가가 관리해야 할 공공재들이 시민들이 돈을 주고 사야할 ‘상품’이 이미 되어버렸거나,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중일세.  자본과 사기업에게 넘겨서는 안 되는 정부의 역할들, 즉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는 일들이 대부분 민영화, 아니 사영화 되고 있는 거지. “무슨 일이든 민간 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프리드먼과 그 추종자들이 꿈꾸었던 신자유주의적인 세계를, 개인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득세한 미국에서나 실현 가능하다고 여겼던 ‘공공서비스의 민영화(Privatization of Public Service)’를, 우리나라에서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네. 실제로 쓰레기 수거에서 치안 유지까지 국가와 자치단체의 몫으로 여겨졌던 많은 일들이 이미 민간 기업들에게 넘어가버렸네.

자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 다음으로 규모가 컸던 군대 조직이 어디였는지 아나? 영국군? 한국군? 아닐세. 부시 행정부가 고용한 민간 군사 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이 정답이네. 전쟁이 한창일 땐 그 규모가 3만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군. 미국에선 이미 민간 군사 기업이 군대보다 더 효율적인 안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군대가 하던 일을 대신하고 있다네. 이러다간 우리에게도 휴전선을 캡스 같은 민간 경비업체가 ‘외주’를 받아 지키는 시기가 올 것도 같네만…

효율성을 제고시킨 민영화가 왜 문제냐고? 공공성이 작동해야 할 영역이 수익성을 앞세우게 되면 시민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네. 요즘 지하철과 철도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걸 보게. 그 사고들의 근본적인 원인도 안전의 민영화, 외주화 때문이네. 서울메트로는 2008년부터 외부 민간업체에 전동차 경정비 등의 업무를 위탁하면서 전동차 정비인원을 2008-2009년에만 200명 넘게 줄였다네.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도 차량정비 인원을 2005년부터 8년 새 2천명 가까이 감축했고. 전동차는 점점 노후화되는데 정비인력이 줄어드니 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겠지.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1인 승무원제를 도입하고 무인 운전까지도 준비 중이라니 걱정일세.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에서 무인 운전이라니 어디 무서워서 지하철을 탈 수 있겠나.

세월호 사고 후에 대통령 입에서 ‘국가 개조’라는 말이 나왔지? 어떻게 국가를 개조시키겠다는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개조가 ‘개선’이 아니고 ‘개악’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세.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의 전형적인 사례로 들었던 일들이 이 땅에서는 다시 시도되지 않게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해야 하네. “쇼크 독트린의 신봉자들이 보기에, 마음껏 그릴 수 있는 백지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구원의 순간은 홍수, 전쟁, 테러 공격이 일어날 때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약해지고 육체적으로 갈피를 못 잡는 순간이 오면, 이 화가들은 붓을 잡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33~34쪽) 클라인은 그녀의 책 『쇼크 독트린』에서 ‘재난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국가와 자본이 재난의 순간을 이용해 어떻게 급격한 민영화 같은 경제 조치를 취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네. 마치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가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지난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들이 해왔던 것처럼 민영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개조한다면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한국(two Koreans)’ 현상이 심화될 거네. 치안, 교육, 의료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라를 보고 싶지는 않네만…

다시 이현주 목사의 글로 이 편지를 마감하고 싶네. “마음에 새겨두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것이 어떤 사건이든 간에, 자네로 하여금 자기 모습을 살펴 고칠 게 있으면 고치고 버릴 게 있으면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바로 거기에 '사건'의 유일한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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