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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⑱-무신불립(無信不立)
[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⑱-무신불립(無信不立)
  • 시사위크
  • 승인 2014.06.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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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인데,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이네. 제자 자공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족식 足食), 군대를 충족하게 하며(족병 足兵), 백성을 믿게 하는 것(민신 民信)”이라고 말한다. 요즘 말로 말하면, 경제와 안보를 튼튼하게 하면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따르게 된다는 뜻이네. 자공이 부득이 이 셋 중에서 하나씩 순서대로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공자는 병, 식, 신 순서라고 말하네. 경제와 안보보다 백성들의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일세.

내가 이번 편지를 ‘無信不立’이라는 공자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어떤 나라든 국민들이 평안하기 위해서는 국가, 기업, 시민사회, 일반 국민들 상호간의 신뢰가 중요한데, 그런 신뢰가 점점 더 약화되고 있어서 안타깝기만 하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적은 나라에서는 불필요한 비용 지출이 늘어날 수박에 없지. 흔히 말하는 ‘사회적 불신비용’ 말일세. 국민들이 정부와 기업, 언론 등을 믿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믿지 못하는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는가? 그런데 많은 연구 조사들에 따르면 우리가 이미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네.  

지난달 25일 현대경제연구원이 OECD 각국의 사회지표를 토대로 산출한 ‘사회자본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공적 · 사적 영역 종합지수에서 5.07점으로 전체 조사 대상 32개국 중 29위였네. OECD 평균인 5.80점에 못 미치는 수준이더군. 우리나라는 사적 사회자본지수(5.4점)와 공적 사회자본지수(4.75점) 모두 OECD 평균인 6.22점, 5.37점과 큰 차이를 보였네.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란 신뢰와 참여, 배려를 통해 공적, 사적 공동체 안팎으로 협력을 촉진하는 유형, 무형의 자본을 뜻하네. 우리나라는 정부와 사법, 교육 시스템, 안전에 대한 신뢰와 살인율 등이 포함된 공적 사회자본지수가 무척 낮았네.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2.34점에 그쳐 OECD 평균인 5.41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정부에 대한 신뢰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신뢰 역시 OECD 27위, 29위로 극히 낮았네. 공적 시스템 전반에 대해 국민들이 불신하고 있다는 뜻이지. 반면에 사회자본지수에서도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1~3위를 차지했더군. 노르웨인 6.66점, 스웨덴 6.53점, 네덜란드 6.51점 순이었네. 경쟁보다는 사회적 협력과 연대를 중시하는 복지국가들이 사회자본도 풍부한 게 당연하겠지.

더 큰 문제는 사회자본의 결핍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세. 세계가치조사협회의 <세계가치조사 – 일반신뢰지수(2005~2009년)>에 의하면, 한국의 일반신뢰지수는 59개국 가운데 30위였네. 주위 사람들을 ‘대부분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28%(2005년)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인 노르웨이 73.7%(2007년), 스웨덴 65.2%(2006년)에 비해 훨씬 낮았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네. 1982년에는 36%였는데 28%로 떨어진 반면, 노르웨이는 1982년 55.5%에서 207년에 73.7%로 증가했더군.

그러면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불신의 사회에서 살게 되었을까? 요즘 ‘적폐’라는 말이 유행이더군. 그래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고 풀이되어 있더군. 다시 ‘폐단’을 찾으니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이라고 적혀 있었네. 또 ‘오랫동안’이 언제부터일까를 고민하다가 우리 어린 시절의 농촌 마을을 생각했지. 그땐 ‘신뢰’라는 어려운 말은 몰랐지만 서로 믿고 살았어. 우리 아버님은 낮에 대문을 걸고 있으면 복 달아난다고 언제나 활짝 열어놓았네. 불신사회? 그게 바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개발독재, 정경유착, 부동산 투기, 빈부격차 확대 등으로 인해 공동체가 해체되고 인간관계가 황폐화되면서 나타난 적폐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정부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적폐'를 바로잡아서 안전한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는데, 잘 될지 모르겠구먼. 적폐를 바로잡는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적폐를 누가 만들었나? 결국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지배세력이 만든 폐단이 ‘적폐’인데, 그걸 어떻게 도려낼지 궁금하구먼. “뿌리 깊은 적폐를 해소하지 않고는 국민 안전은 물론 경제부흥도 국민 행복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는데, 그 적폐라는 ‘암 덩어리’에서 자신을 제외시킨 것 아닌지 모르겠네. "한국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은 사회적 자본을 쌓는 것이고, 사회적 자본은 결국 신뢰"라고 역설했던 분이니 그렇게 몰염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싶네. 그리고 그분이 생각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사회자본지수가 높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였으면 좋겠네만…. 어제 마신 술이 덜 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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