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0일, 박창근 교수가 촬영한 주수천 인근의 모습. 박창근 교수는 "여전히 오염물질을 확인할 수 있고, 20분만 서 있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박창근 관동대 교수>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포스코 옥계 마그네슘 제련공장 페놀 유출사고가 1년을 훌쩍 넘긴 가운데, 포스코가 옥계 주민들에게 10억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옥계면주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포스코가 지역발전기금 10억원을 지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며 “사실상 도장 찍는 일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선 포스코가 사고 원인 및 오염규모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맑은 물이 흐르던 옥계, 페놀로 ‘발칵’

강원도 강릉시 남쪽에 위치한 옥계면은 ‘옥색 시냇물’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옥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소식이 전해졌다. 옥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동해안과 만나는 주수천에서 페놀 등 맹독성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오염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13년 6월 2일이다. 주수천 교량 건설현장에서 터파기 작업 도중 검붉은색의 물이 발견됐고, 해당 공사 업체는 이것을 나무가 썩은 것으로 판단해 주수천으로 퍼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흐른 6월 10일. 현장에서 200여m 떨어진 포스코 옥계 마그네슘 제련공장은 “저장탱크와 배수관로 균열로 인한 누수가 확인됐다”는 오염신고서를 강릉시에 제출했다.

그리고 6월 27일엔 주수천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수상한 물’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페놀이 기준치를 50배 초과하는 등 오염이 심각한 상태였다. 더불어 이러한 오염물질은 포스코 제련공장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오염물질이 유출된 제련공장 밑 토양 역시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후 1년을 훌쩍 넘긴 지난 14일, 포스코가 전문업체에 의뢰해 작성한 토양 정밀조사 보고서 결과가 전해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오염물질은 페놀, 벤젠, 크실렌, 석유계총탄화수소(TPH), 시안 등으로 확인됐고, 이 중 페놀과 TPH는 기준치보다 각각 476배, 186배를 초과해 검출됐다. 오염범위는 3만1,419㎡, 오염 깊이는 2~15m, 총 오염 토양은 13만3,994㎥로 집계됐다. 200L짜리 드럼통 67만개를 채울 수 있는 토양이 오염된 것이다. 물론 이는 포스코가 의뢰해 조사한 결과다.

◇ 유출량에서부터 제기되는 의혹

포스코가 밝힌 사고 배경은 지반침하에 따른 저장탱크와 배수관로 균열이다. 포스코는 이로 인해 2013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오염물질이 유출됐고, 그 규모는 15.7t가량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유출 사실이 확인된 것은 포스코가 밝힌 유출 시점보다 두 달이나 늦다. 만약 유출이 바로 파악됐다면, 최소한 오염물질이 하천방향으로 200m가량을 흘러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고 그만큼 오염도 줄어들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당시 “저장탱크 구조상 유출을 인지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즉, 오염물질 유출이 발생할 경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페놀 유출량을 둘러싼 논란이다.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포스코 옥계 페놀 유출 사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박창근 관동대 교수는 “이 사고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페놀 유출 사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4월 21일부터 4일 동안만 유출된 것이 아니고, 6월 초까지 유출이 계속됐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최소 45일 동안 180t 이상의 오염물질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교수 뿐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심상정 의원은 “강원도가 제출한 고발장에 적힌 기간과 포스코가 밝힌 1일 유출량을 계산하면 353t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15t(포스코 측 주장), 180t(박창근 교수 주장), 353t(심상정 의원 측 주장) 등 유출량 추정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지난 1991년 큰 파문을 일으켰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당시 유출량은 30t가량이었다.

오염 사고 발생 시 사후처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오염물질 유출량과 오염 범위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염물질을 모두 정화할 수 있고, 2차 피해를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옥계 페놀 유출의 경우 당사자인 포스코와 환경단체 및 지자체의 유출량 추정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정부와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3의 기구가 명명백백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6월 10일 박창근 교수 촬영한 차수벽 내 모습. 검붉은 오염물질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박창근 교수는 "지난해부터 줄곧 차수벽 설치를 요청했지만, 최근에서야 설치됐다. 차수벽 내에서 이 만큼의 오염물질이 확인될 정도라면 그동안 추가 유출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제공=박창근 관동대 교수>
◇ 찾기 힘든 포스코의 진정성

유출량에서부터 제기된 의혹은 ‘사고 원인 조작’, ‘당국과의 유착’ 등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 교수는 포스코의 진정성에 큰 의문을 제기했다. 오염 사고를 축소·은폐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스코는 페놀 유출 이후 번듯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저 정중한 유감표시 정도뿐이었다.

지역주민 보상 문제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피해내역과 유출사고 사이의 인과관계 판단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맡기고, 그 결정에 따라 보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최대한 책임을 피하고, 시간을 끌어 주민들을 지치게 만드는 전형적인 ‘나쁜 대기업’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결국 24억원가량의 보상금을 요구했던 주민들은 10억원의 지역발전기금으로 합의를 앞두고 있다.

박 교수는 “지역발전기금 10억원으로 무마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큰 문제”라며 “사고를 정확히 조사하고, 정화대책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킨 포스코는 대기업의 자본과 힘을 앞세운 채 진정한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고 이후 포스코는 일부 구간에만 차수벽(오염물질이 더 이상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는 시설)을 설치했다. 이에 강릉시는 지난해 9월 차수벽을 추가로 설치하라고 요구했지만 한참 지난 최근에서야 설치했다. 그러면서 오염된 토양 위에 3개를 건물을 증축하고, 도로를 포장해버렸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추가 오염 차단에는 소극적이면서도 건물 올리는 데는 거침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끝으로 “포스코가 옥계에서 휘두르는 전횡을 보면 정말 세계적인 대기업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이 문제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포스코 측은 옥계 페놀 유출 사고의 구체적인 내용 및 사후조치,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 등을 묻는 질의서에 답신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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