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유한양행의 88주년 창립기념일엔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 아래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은 지난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창립 최초로 제약업계 1위’에 올라서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때문에 20일 열린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경영진과 임원들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흘러넘쳤다.

◇ 해외 신약 판매로 업계 1위 등극 

‘도전 일등 유한’을 경영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김윤섭 유한양행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김 대표는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하자”며 직원들과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김 대표는 올해 목표로 ‘제약 업계 최초 매출 1조원 돌파’를 내걸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제약업계에선 김 대표의 경영 성과에 떨떠름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유한양행이 신약개발과 투자보다는 ‘해외 의약품 판매대행’에만 열을 올려 ‘규모 키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 김윤섭 유한양행 대표
김 대표는 2010년부터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을 들여와 판매하는 전략을 펼쳤다.

2010년 베링거인겔하임사의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를 시작으로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 길리어드사의 B형 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 화이자제약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 등을 들여왔다. 올해도 연매출 800억원대인 고지혈증치료제 ‘크레스토’ 판매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들여온 제품들은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유한양행의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2011년 6,000억원대에 불과하던 매출은 2012년 7,764억원대로 높아지더니, 지난해 9,316억원까지 올라갔다. 결국 유한양행은 지난해엔 ‘매출 1위 왕관’을 차지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하지만 해외약을 들여와 판매하는 ‘상품매출’의 비중이 커지면서, 제약업계에선 유한양행이 ‘해외약품 도매상’으로 전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2010년 45.9%이던 유한양행의 상품매출 비중은 2011년 52,1%, 2012년 62.4%, 지난해에는 68.5%로 매년 6%~10%포인트씩 빠르게 상승했다. 반면 유한양행이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제품매출은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유한양행의 매출(9,316억원) 가운데, 상품매출은 6,381억원, 제품매출은 2,810억원이었다. 양 매출의 격차는 3,500억원대에 이른다. 

업계에선 지난 1분기 오창공장의 평균 가동률이 떨어진 것도 ‘상품 판매 비중’이 높아진 것에 일부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2014년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오창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78.3%로 전년 동기(84%) 보다 5.7%포인트 하락했다.

◇ 신약 연구 개발은 뒷전, 해외도매 약품상 전락?  

이렇게 유한양행이 ‘해외신약 판매’로 재미를 보는 사이, 회사의 신약 연구개발(R&D) 투자는 초라한 수준에 그쳤다. 유한양행의 1분기 매출액대비 연구투자개발비는 5.9%로, 녹십자 12.6%, 한미약품 15.8%에 비해 훨씬 낮았다. 2012년과 지난해의 경우도 각각 7.4%, 6.1% 등으로 지속적으로 줄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업계 1위’를 차지했지만, 정작 신약개발 성과와 투자는 ‘상위사’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제약업계에선 유한양행의 ‘해외 신약 판매 의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성장은 있었지만, 원가부담이 높은 탓에 저수익구조를 탈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해외 제약사에 로열티 등을 주고 나면 마진율이 높지 않은 까닭이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상품매출의 호조로 전체 매출액이 크게 올랐지만, 손익개선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원가율은 꾸준히 증가하면서 영업이익률은 감소한 것. 2011년 62%였던 원가율이 2013년에는 70%까지 올랐다. 영업이익률은 제품매출이 컸던 2010년에 14.18%를 기록한 반면 상품매출이 제품매출을 역전한 2011년부터는 영업이익률이 한자리수로 떨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올 1분기에도 확인됐다. 올 1분기 유한영향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258억, 1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8%, 16.3% 증가했다. 해외 도입 약품의 선전이 매출 신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영업이익률은 6.2%에 그쳐 상위 5대 제약사 중 가장 낮았다. 

 
결국 장기적으로 탄탄한 수익을 내려면 ‘자체 제품 라인업’을 강화해야 하는 실정인 셈이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2005년 항궤양제 ‘레바넥스’ 출시 이후 뚜렷한 신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다 R&D 투자마저 낮은 상황.

유한양행은 영양수액제 전문업체 ‘엠지’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M&A를 통해 제품 다각화를 노리고 있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매출 1위’ 성과를 낸 김 사장의 리더십에 우려의 시선도 공존하는 상항이다.

1976년 유한양행에 입사한 김 사장은 2009년 공동대표에 오른데 이어, 2012년부터는 단독대표를 맡아오고 있다. 평사원에서 시작해 대표이사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인 셈.

그는 ‘1등 정신’을 강조하며 회사를 업계 1위까지 올려놨다. 하지만 ‘1등’은 그에 걸맞은 사회적인 책임이 수반된다. ‘국내 제약 산업 발전’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 또한 ‘1등 회사’가 갖춰야 할 자세다. 이는 유한양행의 ‘창업정신’이기도 한다.

◇업계 1위 걸맞는 책임 수반되야 

유한양행의 창업정신은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 1926년 당시 식민지 민족의 어려운 현실을 보고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제약회사를 창립했다.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유한양행의 기업이념은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해 국민의 건강과 행복 증진, 나아가 인류 보건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88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유한양행은 ‘사회환원활동’으로 건강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기업으로 존경받아왔다. 이 때문에 ‘해외 약품 도매상’으로 전락했다는 세간의 비야냥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편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유한양행은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상품매출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해외로 수출하는 원료의약품과 자회사인 유한화학에서 판매하는 유한락스 등도 ‘상품매출’에 포함돼 있어, ‘해외약 판매 매출’만 전부 차지하고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연구개발비 비중이 낮은 것에 대해선 “통상 R&D 비용은 임상과 인건비에 투자된다. 현재 24여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그 중 대부분이 임상 1상과 2상이라 비용이 많이 투여되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약 개발에 대해선 “신약을 내놓는다고 다 잘 팔리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최근 몇년 간 M&A를 통해서 제품 다각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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