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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⑲-기독교 근본주의
[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H에게⑲-기독교 근본주의
  • 시사위크
  • 승인 2014.06.23 10: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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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사람이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였던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유(思惟)하기 힘들지. 한 사람의 사유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게고. 그래서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보면 그 사람의 사유의 깊이와 내용도 대강 알 수 있지. 시작부터 철학자 이름이 나와서 너무 어렵다고?

지난 며칠 동안 새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분의 ‘말과 글’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서 하이데거의 말로 시작했네. 한 나라의 총리가 되겠다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왜 그렇게 논란이 되는지를 알기 위해 그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했던 강연을 1시간 넘게 봤네. 정말 세간의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더구먼.

“조선 민족의 상징이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며 남한테 신세지는 게 우리 민족의 DNA였다.” “우리는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며, ‘일제의 식민 지배가 게으른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주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남북분단과 6 · 25전쟁도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며, 남북통일도 협상 같은 것은 필요 없고 ‘하나님의 터치로 이루어진다’” “‘중국이 세계 1위 국가가 되면 심각한 문제’이며, ‘중국을 하나님이 터치하여’ 기독교화, 민주화, 자유화시켜야 한다.” 이분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게 다 ‘하나님의 뜻’이더군. 참 편한 사고방식 아닌가?

난 이분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서 4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좌경화’와 ‘세속화’를 막고, 뉴딜 이전에 있었던 진짜 미국(Pre-New Deal America), 즉 기독교국가로서의 미국(Christian America)으로 되돌아가자고 외치면서 등장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생각했네. 그들도 미국 사회가 세속화되어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연방정부의 복지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게으르고 부도덕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지.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이 내세웠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선거 구호가 바로 개인주의적이고 청교도적인 미국의 전통을 되찾자는 뜻이었지. 당시 기독교 근본주의의 부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제리 팔웰(Jerry Falwell) 목사와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의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 목사였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성서의 모든 말들이 문자 그대로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믿는 성경무오류성, 예수의 신성, 예수가 문자 그대로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동정녀탄생,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 피를 흘림으로써 구원을 받았다는 대속적 구원,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 등 5가지를 핵심 교리로 삼고 있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의 해석만이 진리라고 믿지. 나아가 자신들의 해석에 기초한 교의들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삶의 모든 측면들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근본주의자들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 총리 후보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네. 미국 국민들의 17% 정도가 당대에 예수가 재림할 것으로 믿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라고 하더군.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개신교를 접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개신교 신자의 90% 이상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생각하면 된다는군. 그러니 총리 후보자도 당연히 기독교 근본주의를 믿는 분이시고.

사실 근본주의자라는 말은 경멸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말일세. 아무에게나 근본주의자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호칭을 붙여서는 안 되는 거지. 그래서 합리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신념이나 근거를 마치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자리 매김하는 사람을 부를 때나 쓰는 말일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다른 사람들도 받아들이기를 강요할 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지.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세계관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종파에 대해서는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네. 그들은 진화론을 비난하며, 학교에서도 성서에 입각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네. 개인의 자립과 근면, 자유로운 기업 활동 등을 강조하면서 복지국가와 노동조합은 게으름과 의존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하지. 극우적인 반공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을 총리로 지명하다니…

“그는 벌써부터 자기 조상들의 종교, 그들의 습관, 그들의 조국을 욕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모든 것이 합하여 나에게 일종의 기독교 혐오증을 갖게 해주었던 것이다.” 간디의 자서전에서 인용한 글이네. 간디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지만 기독교에 대해서는 예외였던 시절이 있었다네. 왜 그랬을까? “그 당시 기독교 선교사들은 고등학교 근처 모퉁이에 서서 힌두교인들과 그들이 믿는 신들에 대해 욕설을 퍼붓기가 일수였다. 나는 이것에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만 진리이고 전통 종교는 모두 미신이고 거짓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싫었던 거지. 총리 후보자의 강연 동영상을 보는데 나도 간디처럼 참기 힘들더군. 아무리 교회라고 하지만 그렇게 우리 역사를 비하해도 되는지…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했고, 침례교 목사이면서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찰스 킴볼(Charles Kimball)은 그의 책 『종교가 사악해질 때』에서 종교가 사악하게 되는 다섯 가지 징후를 들고 있네. 첫째, 자기들의 종교만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할 때. 둘째,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할 때. 셋째, ‘이상적인’ 시간을 정해 놓을 때. 넷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할 때. 다섯째,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전(holy war)을 선포할 때. 종교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망치는 사악한 괴물도 될 수 있음을 일러주는 책일세. 우리 사회의 종교인들이 좀 더 합리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네. 사회가 다원화되면 종교적 다원주의도 필요한 거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면서 다른 종교의 가치도 인정하면 안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