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고개를 들기 어렵게 됐다. ‘안전문화’ 확산에 나선지 열흘도 되지 않아, 현대백화점 천호점에서 ‘천장 붕괴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백화점의 안일한 사고 대처가 비난을 사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사고 직후 대피방송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매장 영업’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 ‘고객 안전보다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어 주목된다. 

◇ ‘삼풍백화점 참사 19주기’에 
    아찔한 천장 마감재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참사 19주기’인 지난 29일 현대백화점 천호점에서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오후 2시 4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 현대백화점 1층 안경 판매장의 천장 석고보드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져 6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 

약 24m²(7평 가량) 면적의 석고 마감재가 붕괴하면서 그 안에 있던 공기 순환용 배관(덕트) 4~5개도 매장 아래로 와르르 쏟아졌고, 이를 피하지 못한 고객 조모 씨(34·여)와 딸 이모양(5), 백화점 직원 김모씨(47·여) 등 6명이 찰과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1층에서 한가롭게 쇼핑을 즐기던 120명의 고객들은 갑작스런 천장 붕괴사고에 ‘대피 소동’을 벌여야 했다.

‘대피 방송’ 없이 매장 영업 강행

그런데 현대백화점은 사고 직후 대피 방송도 하지 않은 채 매장 영업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사고 직후 “1층 매장의 천장 마감재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안전하다"는 안내 방송을 한차례 실시한 채, 영업을 계속했다. 1층 매장 손님들은 대부분은 소방당국이 출동한 뒤에야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대백화점은 천장 마감재가 무너진 안경점과 주변 일부 화장품 매장 3~4곳만 가림막 등으로 덮은 채 영업을 강행했다. 당연히 입장하는 손님에 대한 제재도 없었다. 그리고 정작, ‘사고 원인’ 조사는 늦은 밤에야 이뤄졌다. 

현대백화점 천호점은 이달부터 증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공사는 2016년 3월까지 완료할 계획으로 그동안 백화점은 정상 영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고객들과 네티즌들은 “전형적인 안전불감증 행태”라며 현대백화점의 안일한 사고 대처에 비난을 쏟아냈다. 한 고객은 “그냥 마감재가 떨어진 것이라고 해도 사람이 다쳤고, 어디서 더 떨어질지 모르는데 대피방송을 어떻게 안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층에서 쇼핑을 하던 다른 고객은 “사고가 났다거나 피하라는 안내방송 자체를 전혀 듣지 못했다”면서 “최근 큰 사고가 많았는데 어쩌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 29일 오후 2시께 서울 강동구 현대백화점 천호점 1층 한 매장에서 천장 마감재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회색 천으로 가려 놓은 사고 현장의 모습.

아울러 이날은 19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던 날이기도 해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붕괴돼 500여 명이 사망하고 900여 명이 부상을 당해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삼풍백화점 붕괴 직전 간부들은 피해가 생길 것을 알고도 종업원과 고객을 대피시키지 않아 대규모 인명 사고를 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고객들의 안전은 뒷전에 놓고 돈벌이만 급급한 것 아니냐”, “삼풍백화점과 같은 날 일어난 사고라니, 섬뜩하다”, “안전문화 확산시킨다더니 결국 헛구호인가”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날 사고는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안전문화’를 강조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0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서 열린 화재대피 훈련 현장을 직접 찾아 ‘고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길 것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직접 여행용 가방을 들고 고객들과 함께 화재대피 훈련을 체험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최근 열린 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도 “안전관리 규정이 잘 되어 있어도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날 수 있다”며 “현장에서 반복 훈련으로 초기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 헛구호에 그친 ‘안전문화’ 선언

아울러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은 강남소방서와 함께 안전관리 서비스와 예방 홍보 강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해 ‘안전문화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안전문화 확산’은 말 뿐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현대백화점 측은 “건물 시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영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홍보팀 관계자는 “대피방송만 안했지, 안내 방송은 했다”며 “건물 안전과 상관 없는 인테리어 부분이었고, 백화점의 시설안전팀이 매장 천장의 안전을 확인 했다”고 전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선 “천장 마감재 위쪽에 있는 볼트에 이격이 발생해서 떨어졌다”며 “어제 밤 본사 시설안전팀과, 강동구청, 강동소방서, 경찰서, 사단법인 한국건축구조기술사협회 안전점검 결과, 안전에 문제없는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선 이번 사고가 현대백화점의 신뢰성은 물론, 정지선 회장의 리더십에도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정 회장이 경영의 키를 잡은 이후, 점유률 하락과 실적 악화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의 리더십에 의문부호가 찍힌 상황이다.

최근들어 아울렛 투자 등 공격적인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이번 사고로 다시금 신뢰에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