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거세개탁(擧世皆濁)이란 사자성어를 알지? 중국 초나라의 충신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말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는 뜻이네. 우리 사회에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인 것 같네. 어쩌다가 우리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이 사라져버린 사회, ‘아노미’ 상태에 빠진 사회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과정이야 어쩠든 경제적으로 ‘성공(?)’만 하면 전과 14범도 대통령이 되고, 권력욕 때문에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독재자라도 배만 부르게 해주었다면 신처럼 숭배하고, 급기야는 그 독재자의 딸까지 대통령으로 만들고 마는 사회. 아무리 많은 범법 행위를 해도 돈만 많으면 재벌 총수가 되고 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더 좋다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병들게 만드는 사회. 뻔뻔한 자들만이 국무총리도 되고 장관도 할 수 있는 사회. 너무 대한민국을 비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우리 대통령이 하시는 일을 보시게.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국무총리를 6월 26일에 다시 유임시켰네. 두 달 열흘 동안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다 살아 돌아왔는가? 나만 모르는 뉴스인가? 코미디가 별건가? 사람 웃게 만들면 코미디이지. 그런데 그분이 만드는 코미디는 이렇게 뒷맛이 쓰디 쓴지 모르겠네. 게다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를 보게. 우리나라에 아직도 그런 교수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더군. 제자의 논문을 가로채 연구업적을 쌓고,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 나갈 때 필요한 원고를 석사과정 학생들이 대신 써주고, 심지어 일간신문의 기명칼럼까지 제자들에게 대필하게 했다니, 자네는 믿어지는가? <한겨레 21>에서 그분의 제자였던 한 선생님이 쓴 편지를 읽는데 참담하더군, 선생님들을 교육시키는 대학교 교수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 그런 분을 한 나라의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에 적임자라고 지명한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해서 어제는 집에서 가까운 시흥 연꽃테마파크에 다녀왔네. 연꽃들이 한창이더군. 일요일이라 연꽃 구경을 나온 사람들도 많고. 연꽃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으면서 생각했네. 여기 구경 나온 사람들 중에 우리 사회에서 흔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많이 배운 사람들이 이런 곳에 와서 연꽃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맑아질 거라고 생각했네. 그러면서 송명이학의 창시자인 주돈이의 애련가(愛蓮哥)를 읊었지.

“晋의 도연명은 유독 菊花를 사랑했고,/ 唐 이래로 사람들이 모두 모란을 좋아했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는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시궁창 속에서 피어났어도 맑고 청결함을 간직하고 고고하게 서 있는 연꽃의 청아함에 바친 시이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더럽더라도 연꽃처럼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고 싶네. 저 시에서 유래한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는 말은 알지?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고 청아하다는 뜻이네. 더 많이 배우고 가진 자들이 물욕과 권력욕에 빠져 세상을 악취가 진동하는 진흙탕으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난 나만의 향기를 간직하며 고고하게 살다가 가고 싶네. 그런 걸 처렴상정(處染常淨)이라고 하던가?

자네도 마음이 심란하면 연꽃 구경이나 하고 오게나. 샌님이라 혼자 가기 쑥스러우면, 나랑 이건청 시인의 <연꽃 밭에서>라는 시를 함께 노래하면서 가도 좋고. “진흙 밭에 빠진 날, 힘들고 지친 날/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날/ 연꽃 보러 가자, 연꽃 밭의 연꽃들이/ 진흙 속에서 밀어 올린 꽃 보러 가자/ 흐린 세상에 퍼지는 연꽃 향기 만나러 가자/ 연꽃 밭으로 가자, 연꽃 보러 가자/ 어두운 세상 밝혀 올리는 연꽃 되러 가자/ 연잎 위를 구르는 이슬 만나러 가자/ 세상 진심만 쌓고 쌓아 이슬 되러 가자/ 이슬 되러 가자/ 눈도 흐리고, 귀도 막혀서/ 자리에 눕고만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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