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서울 내 마지막 금싸라기땅으로 통하는 삼성동 ‘한전 부지’를 놓고 재계 라이벌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의 뜨거운 한 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중국 녹지그룹과 미국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 등 해외자본이 인수 후보군에서 빠지면서 한전 부지 인수전은 삼성과 현대차, 두 그룹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 현대차 “한전부지 인수 총력”

재계와 부동산업계 등을 통틀어 가장 ‘핫’ 한 이슈는 단연 ‘한전 부지 인수전’이다. 매물로 나온 서울 강남 삼성동 한전 부지는 전체 부지 규모만 8만여제곱미터, 축구장 12개 크기의 강남 노른자위 땅이다. 이 땅의 지난해 말 기준 공시지가는 1조4,837억원, 장부가액은 2조73억원이지만 시세는 3조∼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단 부지매각은 ‘최고가 일반 경쟁 입찰’ 방식으로 치러진다. 쉽게 말해 가장 큰 금액을 베팅하는 곳에 부지를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앞서 언급했듯 삼성과 현대차다. 한때 중국 녹지그룹과 미국 샌즈그룹 등 해외자본이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들 그룹은 한전 부지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 서울 강남 영동대로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 본사의 모습.

일단 부지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현대차’다. 현대차는 지난 17일 한국전력 이사회가 부지매각 방식을 ‘최고가 일반경쟁’으로 결정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지 활용 계획을 발표하며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했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글로벌 5위 완성차업체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이하 GBC)’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사업장(9개국 31개 공장)과, 자동차전문그룹으로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돼 있는 그룹사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게 현대차의 구상이다.

실제 현대차는 일사분란하고 신속한 경영상 의사결정을 위해 계열사까지 통합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하지만 양재동 사옥의 수용능력은 한계에 이른 상태다. 서울에 있는 현대차 계열사만 30개로, 임직원도 1만8,000명에 달하지만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에 입주한 회사는 5개사에 불과하고 근무인원도 5,000명에 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주요 계열사 본사가 외부 빌딩을 임대해 입주해 있고, 현대·기아차 및 현대제철 국내영업본부가 본사와 떨어져 있어 주요 임원의 업무회의 참석을 위한 이동에 적지 않은 시간이 허비되는가 하면, 외부 VIP의 본사 방문 시 영접 공간 부족으로 회의실이나 임원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례도 빈번한 실정이다.

◇ 컨트롤타워․랜드마크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 계획

현대차는 GBC 건립을 통해 문화와 생활, 컨벤션 기능을 아우르는 ‘랜드마크’를 조성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GBC 내에 글로벌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업무시설과 함께 호텔, 컨벤션센터, 자동차 테마파크, 문화 클러스터 등도 포함시킴으로써 GBC를 업무와 문화, 생활, 체험, 컨벤션 등이 조화를 이룬 서울시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조성할 계획인 것. 이를 통해 현대차는 브랜드 제고는 물론, ‘완성차 생산 세계 5위, 수출 세계 3위의 자동차 강국,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폴크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GM, 도요타 등 세계 유수 자동차업체들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본사 및 인근 공간을 활용해 출고센터, 박물관, 전시장, 체험관 등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례로 폴크스바겐이 본사와 출고센터, 박물관, 브랜드 전시관 등을 연계해 운영하고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아우토슈타트’는 20만명 가까운 외국인을 포함해 연간 250만명의 고객 및 관광객이 방문하는 독일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우토슈타트는 독일 관광청이 ‘독일 10대 관광명소’ 중 하나로 선정했을 정도다.

▲ (해외 자동차박물관 / 사진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BMW 본사 옆에 위치하고 있는 BMW박물관은 BMW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기업홍보관으로, 1973년 설립된 이후 2008년에 기존 박물관의 5배 이상인 5,000평 규모로 리노베이션 되어 운영되고 있다. ▲벤츠 박물관은 스튜트가르트 벤츠 본사 및 공장 옆에 위치하고 있다. 벤츠박물관 옆은 고객이 직접 차를 고르고 시승할 수 있는 고객서비스센터인 ‘메르세데스-벤츠 전시 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벤츠 전시 센터에는 승용차 전 모델이 전시돼 있으며 옆에 용품점과 레스토랑이 연계돼 있다. ▲BMW Welt는 차량 출고 및 인도과정을 하나의 이벤트화한 문화 체험공간으로, 개장 5개월만에 약 100만명이 방문했다.

본사와 출고센터, 박물관이 콤플렉스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독일 뮌헨의 ‘BMW 본사’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본사’ 역시 연간 70만명 이상이 들르는 해당 지역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되었고, 미국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GM 본사’와 일본 도요타의 ‘도요타 본사’ 역시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각 사 브랜드 가치 제고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전문그룹인 현대차는 공간적 한계로 인해 글로벌 업체들과의 브랜드 가치 경쟁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처지다. 브랜드 가치 향상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려는 현대차에 있어 GBC가 절박한 이유이자, 현대차가 한전 부지에 집중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 국제적업무·관광·문화 거점 기대도

GBC에 들어설 예정인 다양한 부대시설도 주목된다. 국내 최고 수준의 호텔을 비롯해, △대규모 국제회의가 가능한 컨벤션센터 △한류체험공간․공연장을 포함한 문화시설 △자동차박물관․전시장․체험관을 포함한 자동차 테마파크 △백화점과 대형 리테일을 포함한 쇼핑공간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GBC를 명실상부한 국제적 업무·관광·문화 거점으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현대차의 계획이다.

현대차 계획대로 GBC가 건립되면, 최근 서울시가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를 국제업무·전시·컨벤션 중심의 ‘국제교류복합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발표한 청사진과도 맞아떨어져 서울시 계획과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경제․문화적 부가가치 창출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현대차가 대리점이나 딜러, 고객 초청행사 등으로 해외에서 진행한 행사만 270여회, 참석인원도 2만8,000여명에 이른다. 기아차도 지난해 2만명을 넘기는 각종 행사를 해외에서 치렀다. 계열사 등을 합하면 7만~8만명이 넘는 현대차그룹 관련 행사가 해외에서 치러진 셈이다. 만약 이 같은 행사가 GBC에서 치러지게 되면 8만여명의 숙식뿐만 아니라, 한국을 입국해 쓰고 가게 되는 관광수익도 부수적으로 생기는 등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현대차는 한전 부지를 통한 GBC 건립을 통해 대규모 경제·문화적 부가가치 창출은 물론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가치 향상, 나아가 국가브랜드 제고에 기여함으로써 단순한 제품으로서의 자동차를 뛰어 넘어, 자동차를 매개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대표 사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현대기아차 양재동 사옥.
◇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땅 둘러싼 ‘쩐의 전쟁’ 예고

한전 부지 인수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대차와 달리 삼성은 사뭇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인수전 참여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만 나올 뿐, 구체적인 부지 활용 계획이나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다만 삼성은 삼성생명 등 계열사가 주도하는 자산운용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게 차이다. 삼성생명은 이미 2011년 인근 1만998㎡ 한국감정원의 부지를 2,436억원에 사들여, 한전 본사와 함께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또 삼성물산도 2009년 포스코건설과 10조원을 투자해 이 일대에 서울의료원․호텔․쇼핑몰 등으로 이뤄진 초대형 복합단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강남구청에 제안한 바 있다.

삼성이 한전 부지 입찰 참여를 공식화 할 경우, 피 튀기는 ‘쩐의 전쟁’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전은 올해 안에 매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달 중 감정평가결과를 반영한 예정가 등의 내용을 포함해 입찰 공고할 예정이다. 최근 감평업체 경쟁입찰에 들어간 한전은 두 곳의 감정평가액 산술평균치를 예정가로 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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