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 장관은 "우리경제가 제조업과 수출 의존형에서 탈피해 서비스업과 내수가 함께 성장을 견인하는 '쌍발 엔진형'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7개의 유망 서비스산업을 육성해 15조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1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 정부가 서비스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규제도 대거 풀기로 했다. ‘작심하고’ 규제 사슬을 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감한 수준이다.

일단 발표 내용만 놓고 보면 기대감이 커질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목표 중에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들이 적지 않다. 또, 이를 실행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를 위한 법개정이 필요한데, 이 역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15조원의 투자유치, 18만개의 일자리’라고 하는 장밋빛 청사진에만 현혹돼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 것은 아닌지, 냉정한 점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이유다.

◇ 장밋빛 청사진, 믿을 수 있을까…

정부는 12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6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보건·의료와 관광, 콘텐츠 등 7개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방안을 담은 투자활성화 대책을 확정해 발표했다. 투자활성화 대책은 규제완화와 투자촉진을 통해 내수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미래 국가산업의 동력 확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정부는 일단 규제완화를 통해 외국 여행객들을 국내에 더 머물도록 기반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설악산과 남산에 케이블카 추가 설치부터 영종도와 제주도에 대규모 복합리조트 건설 지원까지 구체적이고 다양한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식으로 규제를 대폭 풀어 서비스사업을 육성하면 15조원의 투자와 18만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정부는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밋빛 청사진의 ‘근거’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실 정부는 원래 계획을 발표할 때 최대치를 부풀리기 때문에 실제 고용과 투자효과는 크지 않은 게 상례다. 22조원의 혈세를 쏟아 부었지만, 사실상 일자리 창출 효과가 없던 4대강 사업을 보면 이런 점이 자명하게 나타난다.

▲ 앞서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통해 새 일자리 34만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이에 턱없이 부족했고 경제효과 역시 기대치에 못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황인철 녹색연합 평화생태국장이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호수로 변한 4대강의 변화-현장조사' 결과 기자회견에서 사진을 들어보이며 4대강의 오염을 주장하고 있는 모습.

당초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통해 새 일자리 34만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고용보험 신규 가입자수로 보면 1,200여명,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하루 평균 공사 인력은 1만1,000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노동자의 3분의1 수준은 외국인으로, 소득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는 터라 내수창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또 젊은 사람은 거의 외국인이고, 내국인은 60대가 대부분이어서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외국인투자촉진법(이하 외촉법)’만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시정연설에서 “외촉법이 통과될 경우 2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한 공장이 착공되어 1만4,000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외촉법 개정안 공청회에선 20만명, 50만명, 1,500명 등 고용 창출 효과가 마치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심지어 산업부가 각 의원들에게 제출한 자료에서도 고용 창출 숫자가 달랐다.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서두르는 정부와 업계가 고용 창출 효과를 주먹구구식으로 부풀려서 홍보해온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 ‘사회적 합의’ 난항… 걸림돌 산적

정부가 내놓은 ‘거창한 플랜’을 어떻게 ‘실행’할 지 여부도 관건이다. 15조원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규제완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먼저 법개정이 필요한데, 현재 상태로는 입법까지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으로 제시한 총 135개 과제 중 법 제․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23개다. 대책을 실현하기 위해 제․개정해야하는 법은 16개에 달한다.

그중 ‘의료 부문’의 경우, 국회에서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핵심 과제로 의료기관이 부대사업을 확대하고 영리자법인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이 꼽히고 있지만, 야당의 입장은 ‘결사반대’에 가깝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의료영리화저지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정부의 의료영리화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법안들을 발의하기도 했다.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개정 대상 법안들 역시 대표적인 여야 쟁점 사안인데다, 지금의 대치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산업 육성법 개정 또한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정부가 12일 발표한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계획에는 학교 옆 호텔건립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4월 8일 조희연 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교육환경 훼손하는 학교 앞 호텔건립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무엇보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투자활성화 방안 중 상당수가 이미 무역투자진흥회에서 발표된 내용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의료 관광객 숙박시설인 ‘메디텔’ 설립, 학교주변에 호텔 세우는 일 등은  지난해 5월 이후 열린 다섯 차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다뤄졌던 내용이다. 당시 정부는 관련 법률안을 지난해까지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를 넘겼다. 그만큼 관련 사업 진행이 지체됐던 사안들이라는 얘기이고, 이에 따라 ‘타이틀’만 바꾼 채 재탕․삼탕 반복해 발표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를 고려했는지 여부도 의문이다. 이미 환경단체에서는 한라산 등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방안을 두고 ‘환경파괴’라며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에 외국인 카지도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또, 민주노총과 전국의료산업노조 등 1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정부의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투자활성화 대책을 ‘전면적인 의료민영화’로 규정하고 3차 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일부 사회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과연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있었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불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 투자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분명 좋은 목표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들은 산업 측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육성 방안 중 관광 분야의 대부분은 주로 ‘개발’에 집주돼 있다”면서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서 외국인 관광객을 머물도록 하겠다는 것 외에 기초적인 관광자원, 즉 어떻게 해야 외국인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오도록 유인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오히려 관광지를 만들 수 있다면 유적지라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게 되면 4대강 개발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정부가 내놓은 서비스산업 육성 방안 중 ‘의료 부문’의 경우, 국회에서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핵심 과제로 의료기관이 부대사업을 확대하고 영리자법인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이 꼽히고 있지만, 야당의 입장은 ‘결사반대’에 가깝다.사진은 지난달 26일 보건의료노조 등 참석자들이 의료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는 모습.

◇ 취지는 ‘공감’, 실행계획은 ‘우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대책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의견이 다르다면 열띤 논쟁을 주저하지 않아야 하고 장애물이 있다면 돌파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대가 있더라도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물론 한국경제에서 서비스업을 진흥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은 없다. 실제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제조업 등 굴뚝산업은 이제 중국과 인도의 공격에 밀려 점차 사양화 돼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서비스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적 특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산업 구조 재편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긍정적이다.

문제는 정책의 내용과 질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처럼 주먹구구식 계획을 통해 ‘밀어붙이기’를 강행한다면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몫으로 남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거창하게 ‘숲’만 그리기보다, 어떤 나무를 어디에 심고, 또 그 나무에서 맺은 열매를 어떻게 나눌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