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회적 고위층들에게 높은 사회적 책무와 도덕성을 뜻하는 말이다. 요즘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커지면서 재벌 오너들의 사회공헌활동이 종전보다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기부 문화’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재벌 오너들의 모습은 사회적 귀감을 산다. 

그런데 재벌 오너들의 기부활동이 순수한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바로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연봉 기부’의 사례가 그렇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연봉 기부’ 약속을 지켰다.

지난해 ‘구속수감’ 상태에서 301억원대의 보수를 수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매를 맞은 후, 보수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던 최 회장은 최근 사회적 기업에 실수령액 보수의 기부를 완료했다. 

14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이 지난해 실수령 보수의 기부 대상을 확정하고 13일 기부처와 협의를 거쳐 187억원 상당의 보유 주식을 전달했다. 

최 회장의 기부금은 이미 세금으로 납부된 액수를 제외한 실 수령액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 C&C 등 4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맡으면서 성과급 등을 포함해 총 301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 실수령액 187억 사회적 기업에 기부 
     SK C&C 지분으로 기부 완료 

기부금은 현금이 아닌, 최 회장이 보유한 SK C&C 주식(13일 종가 기준)으로 전달했다. 기부처는 주로 사회적 기업 활동을 벌이는 4개 기관으로 정해졌다.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센터에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 창업지원 기금’ 100억원 ▲한국고등교육재단 사회적기업연구소에 사회적기업 학술연구자금 20억원 ▲SK그룹 행복나눔재단에 사회적기업 창업기금 47억원 ▲재소자 교정 및 출소자 자활사업에 20억원을 전달했다. 

SK그룹 측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사회 문화의 혁신적 해결을 위해 청년층의 사회적기업 창업 지원, 인재양성, 재소자 재활활동 등 최 회장과 SK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로 기부처를 결정했다”며 이번 기부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런데 최 회장의 통 큰 기부는 SK그룹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아름답게 해석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우선 비난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기부에 나섰다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최 회장은 경영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구속수감 상태에서 거액의 연봉을 챙기다 여론의 뭇매를 받고 ‘기부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 기부결정을 내린 배경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 바 있다. “무노동을 벌어들인 수익으로 생색을 내고 있다”부터 “기부라는 긍정적인 문화를 자신의 과오에 대한 ‘면죄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갖가지 지적이 나왔다. 

‘연봉 논란’ 담긴 씁쓸한 기부

지난 5월 기독교연맹단체 ‘올바른 시장경제를 위한 기독인연대’ 측은 최 회장의 연봉 기부 결정에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기독인 연대 측은 “사회환원은 보수가 정당하게 지급되었을 때에 가능한 일”이라며 “최 회장의 급여는 사회환원될 게 아니라 전액 회사에 환수돼야만 하며 불법적 보수지급에 관해 임원들의 업무상 배임, 횡령 등의 범죄혐의 또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재벌의 사회환원 결정이 자신들이 만든 사회공헌 재단에 기부하는 ‘셀프기부’를 위한 전형적인 꼼수로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이번에 SK그룹 산하 사회 공헌 재단인 행복나눔재단에 47억원 가량의 SK C&C 지분을 기부했다. 행복나눔재단이 해당 지분을 매각하지 않은 이상, 해당 지분은 최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현금이 아닌 지분 형태로 기부한 것으로 두고도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뿐만이 아니다. 업계에선 최 회장이 왜 시점에 기부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 ‘특별사면’ 대비한 행보?

일각에선 ‘특별사면’을 대비한 행보가 아니냐는 시선도 제기됐다. 4년형을 선고받은 최 회장은 ‘가석방’이나 ‘특별사면’이 없는 이상, 앞으로 2017년 9월까지 교도소에 복역해야 한다.

특별사면은 특정의 범죄인에 대하여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의 조치다. 추석이나 설명절, 광복절 등의 좋은 날을 맞아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현재로선 ‘특별사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상황이지만, 최근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 안팎에선 향후 있을 ‘특별사면’ 대상에 최 회장이 포함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횡령·배임·탈세·외화유출 등 경제범죄로 처벌받은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에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설날을 앞두고 단행된 5925명에 대한 첫 특별사면에서 정치인이나 재벌 등은 제외시킨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기치로 내걸면서 대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압박과 규제 시선은 종전과 달리진 모양새다.

정부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SK그룹는 최 회장의 부재 후, 대형 투자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제 활성화를 고려해 최 회장을 향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뒷말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재계 안팎에선 최 회장이 ‘특별사면’을 염두에 두고 발 빠른 기부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기업 활성화’ 차원에서 기부처를 정한 것도 정부의 정책과 발을 맞추는 행보라는 해석도 있다.

SK “기부 그 자체의 순수한 의미로 봐달라”

이런 시선에 대해 SK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순수한 기부 활동으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물론 최태원 회장의 연봉 지급과 기부에 대해 이런 저런 시선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무노동으로 보수를 받은 것은 절대 아니다. 작년 성과급은 2012년 경영활동에 따라 지급됐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지급된 것이다. 다만, 사회적 여론을 고려해 ‘연봉 반납’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회장님 나름의 반성의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 시점에 대해선 “내부적으론 기부처에 대해 고민과 협의를 해왔고, 외부에 알리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알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에 대해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SK그룹 관계자는 “기부는 기부로만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특별사면에 대해선 생각하고 있는 바도 없고, 우리쪽에서 얘기할 사안도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이 결정하시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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