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지난해 9월 3일 아모레퍼시픽 피해 대리점주들이 항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최근 증권가 최고의 화제주는 누가 뭐래도 ‘아모레퍼시픽(회장 서경배)’이다. 지난 13일 사상 최고가인 200만원을 넘어서며 ‘황제주’로 등극해서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1주당 200만원을 넘는 ‘황제주’는 아모레퍼시픽을 포함해 3개 기업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주식시장이 움츠러든 상황에서 아모레퍼시픽의 ‘황제주 등극’ 소식은 여러모로 반가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아모레퍼시픽의 횡포, 소위 ‘갑의 횡포’에 시달린 피해 대리점주들이 그 주인공이다.

◇ ‘과징금 5억원’ 면죄부 받은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갑의 횡포’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영업사원의 막말 파문, 물량 밀어내기 논란, 방문판매원 빼가기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특히 ‘남양유업 사태’와 양상이 비슷해 정치권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의 횡포를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아모레퍼시픽 이같은 ‘갑의 횡포’와 관련, 1년여에 걸쳐 진행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단 공정위는 아모레퍼시픽의 ‘방문판매원 빼가기’에 대해 ‘거래상지위 남용행위’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모레퍼시픽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대리점들에 횡포를 부렸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특약점’은 헤라·설화수 등 아모레퍼시픽의 고가 브랜드 제품을 파는 전속대리점으로, 방문판매원은 아모레퍼시픽 직원이 아니라 특약점에 소속된 위탁판매원이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2005년부터 최근까지 특약점주의 동의 없이 방문판매원 3,482명을 다른 특약점이나 직영점으로 이동시켰다. 특약점주는 계약을 맺은 방문판매원이 회사 전략에 따라 일방적으로 옮겨갈 경우 손해를 보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런 구조를 악용해 아모레퍼시픽은 방문판매 유통경로를 넓히고 기존 특약점주들을 관리하며 부당이익을 취한 것이다.

공정위는 아모레퍼시픽의 이 같은 행위로 특약점들이 불이익을 얻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더불어 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액과징금으로 내릴 수 있는 최고금액이다.

그렇다면 피해 대리점주들의 반응은 어떨까. 피해 대리점주들은 하나같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대리점주에 대한 영업사원의 막말과 욕설, 물량 밀어내기 등 사회적 공분을 샀던 일련의 행위를 ‘무혐의’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위법행위를 입증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판매목표달성을 강요했지만 별다른 불이익이 없었고 물량 밀어내기의 경우에도 부당한 할당량이나 전산망 조작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도 애초 공정위 발표에 없었다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드러났다.

사실 남양유업과 아모레퍼시픽 사건은 내용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공정위는 남양유업에 1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무거운 조치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5억원 과징금만으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이 남양유업의 2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남양유업보다 과징금이 많거나,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갑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면서 공정위가 기업에 ‘솜방망이’를 꺼내 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갑의 횡포’로 이룬 영광?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최근 아모레퍼시픽이 주가 200만원대의 황제주 등극한 것을 두고 이들 피해 대리점주들이 씁쓸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에서 방문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과연 아모레퍼시픽이 갑의 횡포를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성과가 가능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홍보실 관계자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기준, 국내 매출은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 이 중 15.5%를 인적판매, 즉 방문판매에서 올리고 있고 있다. 온라인(10%), 백화점(10%), 면세점(15% 내외) 등 다른 시판채널과 비교해 봐도 비중이 적지 않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 역시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예전에 비해 줄긴 했지만 시판채널 중 방문판매(인적판매) 비중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방문판매원의 숫자는 매출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영업기반인 셈이다.

물론 아모레퍼시픽이 이번에 1주당 200만원을 넘어서며 ‘황제주’로 등극한데는 해외사업에서의 영향이 반영된 성과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아모레퍼시픽의 국내 매출에서 방문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고, 또 지난 수년간 아모레퍼시픽의 국내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황제주 등극의 교두보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2008년 국내 매출 중 방문판매 비중이 57.1%를 차지했다. 이 기간은 아모레퍼시픽이 대리점주들로부터 방문판매원들을 강제로 빼돌려 매출을 올린 시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피해 대리점주들은 아모레퍼시픽의 ‘황제주 등극’이 결국 갑의 횡포를 통해 얻어낸 영광이라고 꼬집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점주는 “아모레퍼시픽의 화려함 뒤에는 대리점주들의 눈물과 고혈이 있다”면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회사 주가가 200만원을 돌파하면서 주식가치가 6조원에 이른다는데, 온갖 못된 짓에 대한 벌금(과징금)은 고작 5억원이다. 게다가 다른 문제들은 모두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아모레퍼시픽은 ‘5억원’으로 부정적 요소를 털어낸 것이다. 어찌보면 서경배 회장 입장에선 갑의 횡포로 이뤄낸 영광치고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일부 피해 대리점주들은 공정위 결과가 부당하다고 보고, 조만간 내부회의를 거쳐 재소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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