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내우외환으로 휴가까지 반납했다. 최근 국제정세는 이라크 내전, 이스라엘 분쟁, 우크라이나 러시아 개입사태 등이 겹치며 혼돈에 빠졌다.<사진=신화/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근 국제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며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러시아 군이 국경을 넘어와 교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와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사건 직후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오인이라며 해명하고 나섰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암암리에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며 반군을 돕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일부 러시아 병사가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와 러시아의 맞불은 여전히 힘 싸움 중이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러시아 뿐 아니라 이라크 내전에서도 미국의 공습으로 시리아 지역으로 흩어진 IS(이슬람 국가)가 자유 시리아군을 흡수하면서 다시금 내전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지난 20일 IS가 미국인 기자 ‘폴리’를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결국 미국은 이라크 내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2011년 12월 완전철수한지 2년 8개월 만이다. 미군의 공습으로  IS는 시리아 지역으로 후퇴한 상태다. 그러나 IS가 시리아지역에서 다시 세를 확보하고 추가 테러를 예고하면서 24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마이크 로저스 하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라크 내전은 이제 ‘반전주의자’ 오바마의 전쟁이 되는 분위기다.

▲ 미군의 이라크 공습에 반발한 수니파 반군 IS는 24일(현지시간) 차량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이 테러로 22명이 사망하고 132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도 장기휴전협상이 결렬되면서 19일부터 다시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됐다. 지난달 8일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2135명이 숨지고 1만915명이 다쳤으며, 이스라엘에서도 6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 속에 가자지구 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 밖에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핑계로 제 4차 핵실험까지 거론하면서 위협하는 등 냉전종식과 함께 시작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균열이 심화되고 있다.

◇ 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작은 경제위기...

미소 냉전체제의 종식과 동시에 세계는 미국의 주도로 질서를 잡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튼튼한 경제를 기반으로 국방력을 강화해 세계 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라는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다.

▲ 미국은 경제위기로 국방비를 삭감하며 미군의 체질변화를 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의 국방전략의 변화가 팍스 아메리카나 포기의 전조라고 분석하고 있다.<사진=AP/뉴시스>
그러나 세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라는 미국 신용위기는 미국의 국방력 약화를 불러왔다. 국방비에만 천조를 쏟아부어 ‘천조국’이라는 별칭이 있는 미국의 군사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기업의 워크아웃과 비슷한 방식으로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는 대신 기동력을 강화하는 국방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인해 국방비를 삭감해야 하는 상황에 맞춰 미군의 군살을 빼고 기동성을 강화한다는 국방전략이다. 이에 따라 육군 병력을 10% 감축하고 퇴역예정이던 항공모함 등의 퇴역시기를 늦췄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국방전략의 변화가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포기하는 첫 단계로, 미국의 국제사회 영향력 감소를 예측한 바 있다.

또 ‘잠에서 깨어난 호랑이’ 중국의 부상도 미국의 국제지위를 흔들고 있다. 중국은 2012년 8조2,300억 달러의 GDP를 기록해 일본을 크게 따돌리며 2위의 경제대국을 굳건히 했다. 아울러 16조2,600억을 기록한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어, 경제전문가들은 2030년이면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발전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출범시키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미국이 중심이 된 국제구제금융(IMF)의 아시아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위안화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아울러 달러를 대신하는 위안화의 기축통화로서의 가능성도 시험하고 있다. 또 한국의 MD참여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며 미국의 대중국 견제 강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 오바마 정부는 한국 등 동맹국의 비난여론을 감수하면서도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할 수 밖에 없었다.

◇ 미국 내부의 무관심, 국제 분쟁개입 동력 상실

미국의 국방력 약화는 외교력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미국은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푸틴의 강경책에 ‘거리두기’로 일관하다가 뒤늦게 경제제재에 합류했다. 이번 이라크 공습도 미국인 기자의 참수영상이 공개되면서 내몰리듯이 시작한 감이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푸틴은 체스를 두는데 오바마는 구슬치기만 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분쟁조정에 소극적인 미국의 태도에 세계는 점점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 계속 도전하고 있고 러시아를 비롯한 중동세계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 내부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최근까지 미국 미주리 주에서는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으로 폭동과 같은 시위가 있었고 캘리포니아에서는 큰 지진까지 이어져 피해액이 5조원에 달했다. 미국은 현재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더구나 문제는 미국시민들의 다수는 자국민이 공개 참수를 당했음에도 이라크와 시리아 사태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시민의 약 40%가 이라크 및 시리아 사태에 무지하다는 조사내용을 근거로 시민들이 국제분쟁에 미국이 관여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시민들의 무관심이 내부 동력의 상실로 이어져 오바마 행정부가 국제 분쟁에 개입하는데 악재로 작용하다고 지적한다.

강력한 국방력을 기초로 세계국가들의 롤모델을 자처하며 외교력을 과시했던 미국이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지배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오바마의 ‘내우외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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