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최광․이하 국민연금)이 일본 ‘전범기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한 문제로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문제는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지만, 올해는 투자금액이 훨씬 더 늘어난 것으로 확인돼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명수 의원(새누리당)이 공개한 자료(‘국민연금공단 일본 전범기업 투자현황 진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4년간 79개 일본 전범기업에 총 5,027억원을 투자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2014년 6월 말 기준). 이는 현재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일본기업(779개/ 총 3조7,694억원) 중 10%에 달하는 규모다.

◇ ‘명분’도 ‘실리’도 없는 투자

자료를 살펴보면 국민연금은 일본 전범기업들에 대한 투자규모를 해마다 늘려왔다. 2011년 52개(1,801억원)였던 투자규모는 2012년 40개(3,037억원)→2013년 47개(4,355억원)→2014년 6월 현재 79개(5,027억원)로 투자 기업수와 투자금액 모두 증가했다.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문제는 지난 국감(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전범기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을 강제 징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등 전쟁범죄 행위에 적극 가담,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을 말한다. 실제 국민연금이 투자한 일본 전범기업들 중에는 미쯔비시나 신일본제철이 포함돼 있다. 이들 회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을 강제동원하거나, 무기를 만들어 지원하는 등 전쟁을 적극 거들었다. 이들 두 기업의 강제동원으로 숨진 조선인은 51명인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들 전범기업에 투자되는 돈이 국민연금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이뤄진 기금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이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한 5,027억원에는 일제징용 희생자와 독립운동가 자손들이 낸 돈도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국민적 반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롯이 투자수익만을 위해 민족적 자존심과 역사의식은 배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수익도 썩 좋지 않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일본 전범기업 중 투자원가도 건지지 못한 기업이 29곳에 달하며, 전범기업 평균 수익률은 2.8%로, 국민연금 전체 평균 수익률인 4.2%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투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이 이쯤되면서 국민연금기금의 투자처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익성 추구도 중요하지만, 국민정서상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명수 의원은 “국민연금공단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진리와 같이 단기적 이익창출에 사로잡혀 장기적으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일본 전범기업을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힘과 양분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특히 2014년 올해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국가 치욕의 날 경술국치 105주년이자 일제의 강점에서 나라를 되찾은 광복 69주년이다. 일본전범기업에 대한 투자 전면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적어도 일본전범기업에 대해 전반적인 재검토와 개선방안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반응이다.

국민연금 측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민적 정서를 고려하면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투자를 문제삼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사실 투자타당성은 충분하다”면서 “현재 국민연금이 해외 수십개국, 수천개 종목에 투자하는데 위탁운용이 대부분이고 인덱스 형식이라 지수추종을 하다 보니 그 안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일본 전범기업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전범기업이라는 사실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커 국민연금 측도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향후 기금이 계속 증가할테고, 이에 따라 해외투자는 불가피할텐데 그런 점에서 고민스럽다. 다만 현재 개선 요구가 있는만큼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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