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갑오년 추석, 재계 대기업 회장들은 각양각색의 명절을 보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유독 빨리 찾아온 갑오년 추석 연휴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대체휴일 적용의 차이로 인해 먼저 일터로 복귀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도심은 한가롭기만 하다. 극소수의 재벌 대기업 회장들 역시 매년 돌아오는 추석을 맞았다. 다만, 추석을 보낸 장소와 표정은 저마다 달랐다.

◇ 추석에도 바쁜 회장님, 정몽구 현대차 회장 돋보여

이번 추석을 가장 바쁘게 보낸 것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정몽구 회장은 추석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6일 인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추석연휴를 이용해 현대차 인도공장과 터키공장을 잇따라 방문했다. 인도공장은 인도시장을, 터키공장은 유럽시장을 겨냥하는 현대차의 첨병으로 그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곳이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강조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은 몸소 인도공장과 터키공장을 둘러보며 현장경영에 전념하는 추석 연휴를 보냈다.

▲ 정몽구 현대차 회장(위)와 허창수 GS·전경련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움직였다. 허창수 회장은 추석을 앞둔 지난 3일 가락시장을 찾아 쌀 500여포대를 직접 구입했으며, 무·배추시장과 청과시장 등을 둘러봤다. 허창수 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침체에 빠진 내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허창수 회장은 별다른 외부일정 없이 가족들과 추석 연휴를 보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재계를 대표하는 직함을 달고 있는 두 사람은 추석 이후 대두될 각종 현안에 대한 고민을 빼놓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확대 문제와 하도급법 개정 문제, 기업 양극화 문제 등이 그것이다.

◇ 아프고 고달픈 회장님, 병상 혹은 감옥에서 맞는 추석

이처럼 추석 명절에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은 회장들이 있는 반면, 병상 또는 옥중에서 꼼짝 못한 회장들도 있다.

지난 5월 10일 밤 쓰러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넉 달이 흐른 지금도 좀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의 병세가 꾸준히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그가 정상적으로 경영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삼성은 후계구도를 본격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향후 삼성을 이끌어가게 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등은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며 향후 구상에 몰두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최악의 몸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상황은 더욱 씁쓸하다. 지난해 7월 배임·횡령·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이재현 회장은 같은 해 8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몸 상태는 갈수록 악화됐고,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 벌금 260억원의 실형을 선고받으며 궁지에 몰렸다.

이후에도 시련의 계절은 계속됐다. 지난 4월 구속집행정지 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재수감되면서 그의 건강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이후 지난 6월 다시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이재현 회장은 현재 서울대병원에 머무르며 재판을 받고 있다. 당초 지난 3일 항소심 판결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재판부는 오는 12일로 선고를 연기했다. 검찰이 1심보다 구형을 낮췄고, 지난달 28일 삼성, 신세계, 한솔 등 범 삼성가의 탄원서가 제출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추석 연휴 동안 이재현 회장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피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현 CJ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우울한 추석을 보냈다. 지난해 1월 횡령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지난 2월 대법원에서 형이 최종 확정된 최태원 회장은 어느덧 네 번째 ‘옥중 명절’을 맞았다. 두 번의 설날과 두 번의 추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그는 역대 대기업 회장 중 가장 긴 수감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그는 이번 추석을 맞아 SK 임직원들에게 옥중 편지를 띄워 이목을 집중시켰다.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최태원 회장은 임직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안부로 운을 뗐다. 이어 “지금 주어진 상황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도 “하지만 언론 등을 통해 나라의 경제상황이나 그룹의 경영환경에 대한 얘기를 접하고 나면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한 “우리 아니면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과거의 SK가 지금의 SK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패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각 사 CEO를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전진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어 전화위복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응원도 빼놓지 않았다. 허나 유난히 밝았던 올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는 최태원 회장의 마음은 쓸쓸함과 무기력함을 지우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감옥 후폭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별다른 활동 없이 건강 회복에 주력했다.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됐던 김승연 회장은 파기환송심까지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극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수사와 재판, 수감생활 등으로 그의 건강은 몹시 쇠약해졌다. 이에 김승연 회장은 출소 이후에도 미국 등을 오가며 건강 회복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8,000억원대 배임·횡령·탈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또한 ‘아픈’ 추석을 보냈다. 암이 재발한 조석래 회장은 지난달 신병치료차 미국에 다녀오는 등 재판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 역시 향후 치열한 재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몸과 정신이 모두 고달픈 추석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위)과 신동빈 회장(아래).
◇ 고민 많은 회장님,  추석 무색한 ‘집안싸움’

특별한 외부활동이 없었던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롯데가(家)는 고민 많은 추석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고민의 이유는 다름 아닌 ‘제2롯데월드 타워’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알려져 있는 ‘제2롯데월드 타워’의 저층부 조기개장은 현재 각종 악재에 부딪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상황에서 이른바 ‘싱크홀’ 문제가 이슈화됐기 때문이다.

허나 롯데는 ‘제2롯데월드 타워’ 저층부 조기개장을 전혀 포기하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추진 중이다.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시민들에게 해당 공간을 개방하는 ‘프리오픈’을 진행 중이며, 이후 서울시의 임시개장 승인을 받으면 즉시 임시개장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안전, 교통 등 산적한 문제가 여전히 많아 조기개장이 그리 녹록치는 않을 전망이다.

재벌 대기업 회장은 아니지만 임영록 KB금융 회장 또한 많은 생각 속에 추석을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금감원이 중징계 결정을 내린 임영록 회장은 추석연휴가 채 끝나지 않은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 문제가 없었고, 중징계는 자의적·주관적 근거에 의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발 빠른 기자회견을 통해 나온 그의 ‘추석 구상’은 금융권에 또 한 번 논란의 불을 지필 전망이다.

▲ 왼쪽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오른쪽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가족 간의 정과 덕담을 나누는 추석, 집안싸움으로 바쁜 재벌가도 눈에 띈다. 형제간의 다툼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는 금호가(家)와 효성그룹이 주인공이다.

형제간의 묵은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는 금호가(家)는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소송으로 얽혀있는 상황이다. 박찬구 회장은 추석을 한 달여 앞둔 지난달 12일 박삼구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시작된 갈등이 2009년 경영권 다툼과 그룹 분리, 상표권 소송 등에 이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후계구도를 다지고 있는 효성그룹 또한 형제간의 갈등으로 추석이 무색해졌다. 조석래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지난 7월 장남 조현준 사장과 동생 조현상 부사장을 겨냥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인데, 효성그룹이 후계구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향후 이들의 갈등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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