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오늘은 당나라 학자인 유종원이 지은 ‘3계(三戒)’에 나오는 새끼 고라니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네. 중국 임강 지역의 한 사냥꾼이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새끼 고라니를 잡아 집에서 기르기 시작했다네. 그런데 그 집에서는 이미 제법 무서운 개들을 많이 기르고 있었네. 그 개들은 어린 고라니를 보자마자 군침을 흘렀지. 하지만 주인이 새끼 고라니를 애지중지하니 어쩔 수 없었네. 옆에만 가도 주인이 호통을 치니 고기 생각은 잊고 사이좋게 지낼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개의 본능이 어디 가는가? 세 살이 된 그 고라니가 어느 날 외출을 했다네. 동네 길가에서 놀고 있는 큰개들을 만나자 그들과 함께 놀려고 달려갔다가 그만 그 개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네. 불행하게도 고라니는 죽으면서도 자기가 왜 그렇게 죽어야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군. 여기서 임강지미(臨江之麋)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네.   

자신과 친구들인 줄 알았던 개들의 먹이가 되면서도 자신이 왜 그렇게 죽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니 고라니가 불쌍하지? 개라는 족속이 선하고 착해서 자기를 잘 대해주는 것으로만 알았으니 밖에서 만난 개들에게도 꼬리를 친 거지. 그런데 그게 어디 미물인 고라니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는가? 문학의 한 갈래인 우화(寓話)는 주인공인 동식물이나 사물의 행동을 통해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준다는 건 알지? 난 고라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민초들을 생각했네.

게으름피지 않고 날마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왜 자신들의 삶이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았는가? 예전 같으면 날마다 일할 직장이 있다는 건 삶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뜻이기도 했지. 그래서 취직을 하면 월급 타서 목돈 만들어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여행도 가는 등 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세울 수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 이 땅에 그런 청년이 얼마나 되겠나? 지금 이 곳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무척 불안하네. 일하는 사람들 중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네. 정규직 일자리라고 할지라도 세계 경제 상황이나 회사의 형편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도 있지.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등의 신조어 유행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야.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되었을까? 물론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그 주범이지. 하지만 모든 나라가 다 우리처럼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되고 양극화가 심화되지 않은 걸 보면 우리나라만이 가진 어떤 맹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난 그 맹점이 저 고라니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네. 자네 궁금할까봐 먼저 답을 말하면, 우리 국민들이 매우 선하고 착해서 국가와 자본의 의도대로 사회화가 잘 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거지. 그나마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야 국가가 서민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고나 말할까…

그럼 어떻게 국민들 다수가 지배계급의 본성을 모른 채 그들을 친구로 생각하는 ‘고라니’가 되었을까? 한 나라의 ‘국민’을 만들어내는 사회화기관들 모두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니 따분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먼저 고정희 시인이 30여 년 전에 발표한 <현대사 연구 · 1>의 두 번째 연을 읽어 보세.

“어여쁜 말들을 고르고 나서도 저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나고 미운 말/ 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 누구에게나 익숙지 못한 말/ 서릿발 서린 말들이란 죄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다보니/ 남은 건 다름아닌/ 미끄럼타기 쉬운 말/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뿐이었습니다/ 썩기로 작정한 뜻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에도/ 몹쓸 괴질이 숨을 수 있다면/ 그것은 통과된 말들이 모인 글밭일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서른다섯 해가 걸렸다니 원)”

 “어여쁜 말”,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른 말, 검열에 “통과된 말들이 모인 글밭”을 조심하라고 하는군. 학교에서나 방송 등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자네가 자주 들었던 말들을 하나 둘 떠올려보게나. 신자유주의를 우리 사회의 지배 이념으로 만들기 위해 지배세력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들만 몇 개 보세. 균형예산, 노동의 유연화, 규제완화 및 철폐, 의료선진화, 경제 성장, 민영화, 작은 정부 등 모두 아름다운 말들이네. “모나고 미운 말/ 건방지게 개성이 강한 말/ 누구에게나 익숙지 못한 말/ 서릿발 서린 말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미끄럼타기 쉬운 말/ 찬양하기 좋은 말/ 포장하기 편한 말뿐”이지. 하지만 사기꾼들의 말이 감미롭듯, 저 말들이 모두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속이는 말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저 ‘고라니’ 신세가 되는 거지. 저 말들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 가치라는 걸 모르면 영원히 속고 살 수밖에 없는 거지.

시인은 35살에 아름다운 말들에 “괴질”이 숨어있다는 걸 깨달았다는데 아직도 저런 말들에 속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일을 하면서도 자살율은 세계 최고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나라가 어디인가? 노동의 유연화로 일하는 사람 절반이 일자리가 불안하고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나라는? 물론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일세. 자네도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한 결과가 세월호 참사라는 건 동의하지? 그런데도 요즘 다시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앞장서서 규제완화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구먼. 물론 자본과 보수언론들도 맞장구를 치고 있고. 정말 당장 규제완화가 이루어지면 경제가 다시 살아나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까? 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반대하겠나. 지난 수 십 년 동안 써먹은 말과 수법을 반복하고 있어도 착한 백성들이 속고 있으니 속상하고 안타깝네. 그래서 요즘 젊었을 때 들었던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씀이 자꾸 생각나.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임강지미(임강의 고라니라는 뜻)’처럼 살다가 까닭도 모르고 가서는 안 되는데…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