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현재 구속수감 중인 주요 기업의 총수에 대한 사면을 언급해 관심이 모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신중한 성격의 황 장관의 언급을 두고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지난 24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현재 구속수감돼 있는 일부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면이나 가석방 등 선처 가능성을 시사했다. 황 장관은 “잘못한 기업도 부당한 이익을 사회에 충분하게 환원하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에 노력하면 기회를 드릴 수도 있다”며 재벌 ‘사면론’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25일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황 장관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해 ‘사면론’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최 부총리는 “투자가 활성화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주요 기업인들이 계속 구속 상태에 있으면 아무래도 투자를 결정하는데 지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실형이 선고됐거나 아직 재판 중인 대기업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이다.

황 장관과 이어진 최 부총리의 ‘사면론’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와 교감을 거친 뒤 국민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나온 발언으로 분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벌 비리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며 항상 신중했던 황 장관이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발언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경기부양의 중책을 맡은 최 부총리가 빠르게 황 장관을 지원했다는 점도 설득력을 더한다.

◇ 유전무죄·무전유죄 논란 가속
 
하지만, 고개를 드는 ‘재벌 사면론’에 시민들과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시민은 “일반 시민은 짧은 형량도 끝까지 집행하면서, 부자들에게는 형량까지 줄여준다”며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다른 시민은 “돈이 있는 사람은 죄를 범해도 결국 다 봐주는 것 아니냐”면서 강하게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 현재 비리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기업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좌측부터)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이다.
사실 재벌들의 이런 사면이야기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정권을 불문하고 재벌총수에 대한 판결은 관심이 집중된 1심에는 실형을 선고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량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종적으로 죄가 확정되더라도 어느 순간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확인한 것은 돈과 권력이라는 ‘대마’ 불사론과 무전유죄·유전무죄란 사실이었다.

이 같은 여론에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황 장관도 불가 1년 전만 해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가석방은 없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실제 현 시점까지 ‘재벌 총수 비리 무관용’ 원칙은 지켜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돼자 법무부 관계자는 “특혜 없는 공정한 법 집행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원칙에 부합되고 요건이 갖추어질 경우 누구나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고,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원론적인 얘기”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현행법상 1/3이상 형기를 채우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고 기업인들을 굳이 배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실제 가석방 검토대상은 실무상 형기를 80%이상 채웠을 경우 그나마 심사가 이뤄지고 대부분의 수형자들은 100% 형기를 채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 매번 나오는 ‘한국경제위기론’ 불편

▲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황교안 장관의 재벌총수 사면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경기부양의 중책을 맡은 최 부총리로서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대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사면이 거론될 때마다 매번 나오는 ‘한국경제위기론’도 불편하다. 역대 정권들은 경제인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진행하면서 ‘경제위기’를 이유로 들었다. 사면권 남용을 막겠다고 공약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이 거론되는 시기에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아베노믹스의 실패로 엔화가치가 떨어져 한국의 대외경쟁력 위기, 미국 금리인상 긴장, 유럽 양적완화로 인한 악영향 등의 이야기다. 모두 분명한 사실이지만 일부 재벌 총수들의 노력으로 위기를 넘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세계적인 흐름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제살리기’를 비리 재벌총수에게 맡기는 것을 비관적으로 본다.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은 “특가법상의 횡령을 범해 가중처벌 대상인 기업인들에 대해 처벌을 제대로 안했다”며 “이런 재벌들 봐주기 때문에 자꾸 이런 범죄가 거듭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리 재벌 총수들은 대부분 분식회계 등의 방법으로 회사의 자금을 횡령했다. 원칙적이라면 국가의 세금으로, 주주의 배당으로, 노동자들의 급여로 재분배 과정을 거쳐 사회로 환원될 이익이었다. 이런 범죄에 대한 사면은  또 다른 범죄를 부르고, 결국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증대하겠다’던 초이노믹스와도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은 일단 조심스런 입장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경제를 담당하는 최 부총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도 “대통령의 공약이 있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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