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관계자가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 혹은 가석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경우 가석방 요건을 갖췄다는 점에서 이번 '기업인 사면론'이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31일 오후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정부가 비리 기업인들에 대한 ‘선처’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다. 얼마 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기업인 ‘가석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꺼내면서 여론을 살피는가 싶더니, 여기에 최경환 부총리가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을 옹호하는 발언을 자주 내뱉으면서 ‘사면론’에 불을 지폈다.

물론 최경환 부총리는 논란이 커지자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을 얘기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비리로 구속된 기업인들에 대한 ‘선처’ 의지는 변함없는 듯 보인다.

◇ ‘사면’에서 ‘가석방’으로 입장 선회… 왜?

사실 ‘사면’과 ‘가석방’은 엄연히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사면은 특별사면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은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 선고의 효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으로, 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리 기업인들에겐 최고의 ‘면죄부’다. 

반면 ‘가석방’은 형법상 보장된 권리다. 형기의 3분의1 이상을 채우면 된다. 여기에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하고, 심사를 통해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사면은 어느 정도 정치적 입김이나 배려가 개입되지만, 가석방은 개별 수감자가 갖고 있는 일종의 권리인 셈이다.

당초 최 부총리는 사면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 부총리는 사면을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차례 내뱉으며 오해에 불을 지폈다. 특히 지난달 30일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있었던 행사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인 사면 발언과 관련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오히려 긍정적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까지 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2일 최 부총리는 말을 바꿨다. 최 부총리는 이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사면까지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팩트는 가석방에 대한 것이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사실 대통령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면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 특히 당선 공약으로 ‘사면권 자제’를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지면서까지 ‘사면카드’를 꺼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여기에 ‘기업인 사면’에 대한 여론까지 악화된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을 버젓이 어긴 대통령’으로 전락하면 정치적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최 부총리가 ‘사면’이 아닌 ‘가석방’으로 한 발 물러선 것도 이런 상황이 고려됐을 가능성이 크다. 두 장관의 발언이 ‘가석방’이냐, ‘사면’이냐를 두고 잠시 엇갈리긴 했지만, 사실 이런 ‘민감한’ 발언은 청와대와 교감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지만, 어쨌든 사면이 아닌 가석방에 쐐기를 박은 만큼 비리로 수감된 기업인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듯 보인다. 여기에 일부 언론과 재계 등에서 경제살리기를 명분으로 구속 기업인에 대한 선처 필요성을 자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만간 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본격화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가석방 요건을 갖춘 기업인들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그의 동생인 최재원 SK 부회장, 그리고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LIG건설 부사장 등 4명이다.

▲ 최경환(사진 우측 아래) 경제부총리가 ‘기업인 사면론’에 대해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을 얘기한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계를 비롯한 정재계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진 좌측 아래는 기업인 가석방에 단초를 제공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
◇ ‘법’ 보다 ‘경제’가 우선인가

그중 최태원 회장은 법조계와 정․재계를 통털어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월 4년형을 선고받은 최태원 회장은 이미 형기의 1/3을 마쳐 가석방 요건을 갖춘 상태다. 게다가 재벌 회장으로서는 처음으로 1년8개월이라는 최장기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수혜자’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 정부의 비리 기업인 가석방론이 사실상 최태원 회장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 재계에서도 최태원 회장이 1년8개월간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해왔다는 점과 최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SK가 투자 결정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가석방이 무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여론이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경우, 버젓이 법을 어기고도 재판과정에서 거짓말을 한다던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당시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을 향해 “자신에게 유리한 진실과 허위 사이를 넘나들며 마음대로 수사 기관과 법원을 조종할 수 있는 듯 행동했다”며, “과연 기본적인 규범의식이나 준법정신이 있는지, 재판 제도나 법원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꾸짖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나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데 반해, 최태원 회장만 실형 판결을 받은 것도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이 보여준 태도를 놓고 법조계에선 가석방을 불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게다가 ‘기업인 가석방론’의 단초를 제공한 황교안 법무장관은 지난해 7월 형기의 80%를 채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해 가석방 불허결정을 내렸다. 당시 법무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회 지도층 인사나 고위 공직자에 대해선 가석방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혐의가 비슷한 최태원 회장에 대해 ‘특혜’를 줄 명분이 뚜렷치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최태원 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강하게 추진한다면 적지 않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경제살리기’가 범법자에 대한 ‘특혜 명분’이 돼서는 안된다는 게 현재로선 지배적인 여론이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경제’가 ‘법’ 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 실제 가석방 검토대상은 실무상 형기를 80%이상 채웠을 경우 그나마 심사가 이뤄지고 대부분의 수형자들은 100% 형기를 채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한 인사는 “범죄를 저지르고 벌 대신 선처를 구하는 건 국민들을 우롱하는 행위”라면서 “그저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범죄자도 상관없다는 프레임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사법체계는 물론, 오히려 경제 근간을 흔드는 일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태원 회장이 ‘합법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는 오롯이 ‘가석방’ 뿐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카드도 아직까지 유효한 상태다. 당연히 최태원 회장은 사면 조건도 충족했다. 과연 ‘키’를 쥐고 있는 여론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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