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도로공사의 ‘총체적 난국’이 국정감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감에 나선 국회의원들조차 공공기관 중 ‘최악’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는 가운데, 취임 초부터 ‘혁신’을 강조했던 김학송 도로공사 사장의 ‘진정성’에도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 국감에 출석한 김학송 도로공사 사장.
이른바 ‘국감 시즌’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시기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이 시기에 공공기관의 각종 비리와 의혹은 물론 일반 기업들의 ‘꼼수’까지 지적하곤 한다. 물론 부족한 면이 적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국감은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시작됐다. 다른 때와 비교했을 때 준비 기간이 적은 터라 ‘부실 국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도로공사의 ‘총체적 난국’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 비리로 꽉 막힌 도로공사

우선 도로공사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개인의 일탈은 물론 조직적인 도덕적 해이까지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8년 이후 수사당국으로부터 수사개시착수 통보를 받은 도로공사 직원은 간부급을 포함해 34명에 달한다. 혐의 역시 뇌물·향응 수수에서부터 음주운전, 공문서위조 등으로 다양했으며, 이 중 형사처분을 받은 직원 또한 8명에 달했다. 또한 2009년 이후 불법 인터넷 도박을 하거나 강원랜드 카지노에 출입하다 경찰청 또는 감사원에 적발당한 직원도 11명이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각종 비리와 도덕적 해이의 근절보단 ‘제 식구 아끼기’에 더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이후 뇌물·향응 수수 및 횡령으로 적발된 20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인 12명이 경고, 견책, 감복 등 경징계를 받은 것이다.

일탈과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는 사이 도로공사의 청렴도 점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도로공사의 종합청렴도 점수는 2011년 8.86점에서 2012년 8.30, 2013년 7.82점으로 꾸준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3년의 경우 공기업 및 언체 공공기관 평균 점수(7.86)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도로공사의 ‘제 식구 아끼기’는 단순히 징계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로공사는 퇴직자에게 쏠쏠한 ‘노후자금’을 챙겨주는 것에도 적극적이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업소 334개 중 265개를 도로공사 출신에게 안겨준 것이다. 그 규모만 7,529억원에 달한다. 그리고 이 중 170개는 수의계약으로 체결돼 도로공사의 ‘전관예우’ 의혹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다. 도로공사 퇴직자모임인 ‘도성회’ 또한 도로공사의 일감 몰아주기 혜택을 받았다. 도성회는 2010년부터 올해 9월까지 도로공사의 각종 인쇄·물품구매와 관련해 352건의 수의계약을 맺었다. ‘도성회’의 자회사인 에이치앤디이 역시 도로공사와 휴게소 4곳 및 주유소 3곳의 계약을 체결했다.

국민들이 반드시 이용할 수밖에 없는 ‘도로’를 놓고 도로공사 구성원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도로공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감에서 지적받은 사안을 모두 인정한다”며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업소 운영권의 경우 내년부터 모두 공개입찰로 전환할 예정이다. 아울러 다른 지적 사항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이번 국감에서도 도로공사는 여지 없이 비리로 꽉 막힌 '총체적 난국'을 드러냈다.
◇ 무능력·무책임한 도로공사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있는 도로공사는 정작 제 할 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먼저 도로공사는 교통량 수요예측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드러내며 12년간 혈세 2조원 이상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자도로를 건설하면서 최소운영수입보장을 약속하는데,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많은 비용이 투입된 것이다. 특히 해당 민자도로들은 대부분 통행료가 비싸 국민들의 부담이 큰 곳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혈세마저 낭비한 꼴이 됐다.

도로공사는 국유지 관리도 엉망이었다. 2009년부터 올해 7월말까지 불법 점유된 도로공사의 국유지는 약 20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불법 점유한 땅을 재임대해 법적분쟁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국감을 통해 공개된 이른바 ‘포트홀 소송 대응방안’이다. 포트홀은 도로에 움푹 파인 구멍을 말하는데, 이로 인해 사고도 종종 벌어진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포트홀 사고 관련 소송이 벌어질 경우 ‘운전자의 과실을 주장하고, 도로공사의 도로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하라’는 매뉴얼을 마련해둔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공사는 빚도 놀라운 수준이다. 26조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도로공사는 하루에 31억원, 한 달에 959억원을 ‘이자’로 내고 있다.

결국 도로공사는 경영에서부터 전략,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모습만 보여줬다.

▲ 3선 의원 출신인 김학송 사장은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분류되며, 도로공사 사장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을 일으켰다.
◇ ‘낙하산’ 김학송 사장, 도로공사 혁신 의지 실종?

도로공사를 둘러싼 논란이 봇물 터지듯 줄줄이 터져 나오자 취임 1년이 채 안 된 김학송 사장의 능력과 도덕성에도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사실 도로공사는 이미 예전부터 국감에 많은 이슈를 제공했다. 그만큼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이 꾸준히 이어져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학송 도로공사 사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하며 “국민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혁신과 소통, 신뢰를 경영방침으로 내세우며 도로공사 체질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김학송 사장은 취임 이전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며 불편한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16, 17,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을 지낸 김학송 사장은 ‘친박’의 대표주자로,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캠프 유세지원 단장을 맡은 바 있다.

문제는 김학송 사장 본인 역시 과거 도덕성 논란으로 구설수에 휩싸인 바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2006년 김학송 사장은 이른바 ‘평일 군부대 골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국회 회기 중, 그것도 평일에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군부대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게다가 당시 김학송 사장은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국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피감기관인 군부대에서 골프를 친 것이다. 과거의 일이지만, 최근 드러난 도로공사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오버랩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학송 사장의 ‘혁신’ 외침은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도로공사는 지난 4월 전국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도로공사 외주업체들의 비리와 관련해 신고포상금을 내거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비리 제보자에 대해 도로공사 간부가 입막음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만 더 키웠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김학송 사장이 비리 근절 등을 강조하긴 했으나 내부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이나 캠페인이 진행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국감 때 워낙 많은 지적을 받았지만 사실 매년 그래왔기 때문에 특별히 동요하는 일도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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