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운 시사위크 발행인
[시사위크=이형운] 취임 100일을 맞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명색이 집권 여당의 대표인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대 놓고 김무성 대표를 힐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체면을 구기게 된 계기는 개헌론이다. 김 대표는 중국을 방문 중인 지난 16일 “정기국회 이후 개헌론이 몰아칠 것”이라며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했고, 불과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개헌 발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사과 발언’으로 정치적 파문은 최소화했지만, 김 대표의 체면은 구겨질 데로 구겨졌다. “청와대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것 아니냐”, “너무 강단이 없다”는 비난 등이 그것이다.

여기다 최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개헌을)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헌관련 언급을 한 것은 기사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청와대는 김 대표가 다분히 의도성을 갖고 개헌발언을 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집권 여당 대표인 김 대표가 통치자인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궤를 달리할 수도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이 ‘경제 블랙홀’이라며 개헌 자제론을 언급한 상황에서 김 대표가 개헌을 언급한 부분은 ‘당·정·청 관계’를 고려할 때 일정 부분 불찰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헌론의 화두를 던진 이상 ‘시기적인 부적절성’은 인정하더라도 개헌론 자체까지 부정하는 듯한 발언은 실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정치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까지 접는 듯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친박’과 ‘비박’이라는 ‘정치적 이분법’에 너무 함몰되었기 때문에 나온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을 추종하는 ‘친박’ 진영의 정치적 논리와 동떨어진 행보를 보일 경우, 향후 정치행보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중압감이 자신의 정치철학인 개헌론을 번복하게 만든 원동력이란 분석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비박’ 진영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김 대표의 처지다. ‘비박’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제기하는 상황이고, 이 또한 김 대표로서는 ‘정치적 짐’이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큰 꿈을 꾸고 있는 김 대표라면 ‘친박’과 ‘비박’을 오가는 정치행보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지금 김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 김무성’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과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정치인 김무성’이란 이미지가 필요할 때다. 비록 그것이 청와대와 일정 부분 척을 진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요구’가 반영된 정치적 신념이라면 ‘정치인 김무성’ 입장에서 얼마든지 싸워봄직한 일이다.

또 김 대표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당·정·청 협의’를 통한 정책은 공유하며 함께 실현해 가야하지만,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부속기관이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준다면 김 대표 입장에서는 ‘독’이나 다름없다. 원만한 당·청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적인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만들 책무가 김 대표에게 있다.

이것이 김무성 대표가 ‘정치인 김무성’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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