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얼마 전에 국정감사장에서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해프닝이 있었다더군. 낙하산인사 논란으로 시끄러운 자니윤이라는 연예인 출신 한국관광공사 감사에게 해당 위원회 위원장이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며 “79세면 이제 은퇴해 쉬실 나이 아니겠나. 쉬시는 것이 상식에 맞다.”고 말했다네. 그러자 여당인 새누리당 대변인은 “설훈 의원은 어르신들을 모욕한 데 대해 즉각 사과하고, 위원장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부 네티즌들은 “어이가 없네요”, “본인은 안늙나요?”, “자니윤 대답 통쾌하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하네. 그런데 통쾌하다는 그 대답이 더 가관이더군. 자니윤이 “그렇게 느끼는 거야 위원장님 권리지만 최근 검사에서 제 신체나이는 64세로 나왔다”며 “위원장님보다 팔굽혀펴기도 더 많이 하고 옆차기, 돌려차기도 한다. 먹는 약도 하나 없다.”고 말했다나. 이게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고 우습더군.

정말 그분 자신은 직원이 500여명이고 일 년 매출액이 4000억 원이 넘는 한국관광공사라는 조직의 상임감사 역할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역대 최고령 공직자라는 기록 달성을 할 정도로 자신의 ‘감사’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고 있을까? 혹시 이 분은 자기 같은 사람을 그런 자리에 낙하산으로 임명하는 우리 정치 시스템 자체를 코미디처럼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가 국회에서 한 코미디 같은 답변을 보고서도 ‘통쾌하다’고 응원하는 보수언론과 네티즌들을 보면서 자신의 또 다른 ‘조국’인 미국을 생각하며 속으로는 ‘한국’을 비웃고 있지 않을까? 코미디 같은 해프닝 하나를 보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 하지만 내게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왔던 건 ‘노인과 일’에 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고정관념이었네. 왜, 언제부터, 우리들은 노인이 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79세면 은퇴해서 쉴 나이라는 말이 왜 ‘막말’이고 ‘노인 폄하’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늙어서까지 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미왕국’인 것 같네. ​그렇게 일만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지.  지난 8월 29일 미국의 CNN은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잘 하는 10가지 것을 소개했는데, 그 중 3번째가 ‘일 중독자 Workaholics’ 나라였다네. CNN이 인용한 2012년 경제기획원 자료에 의하면, OECD 평균 노동시간이 1주일에 32.8 시간인데 비해 한국인은 그보다 12시간이 많은 44.6시간 일하고 있더군. 게다가 CNN은 만화작가 단체 ‘도그하우스다이어리’(thedoghousediaries)가 각 나라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한 단어로 작성한 세계지도를 보여주면서, 우리나라는 ‘일 중독자 Workaholics’ 나라로 표시되어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주더군. 근면해서 좋은 것 아니냐고? 창피한 노릇이지.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5천 달러가 넘는 나라 사람들이 일만 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사람들이 볼 때는 신기하고 우스운 거지. 정말 우리는 이 땅에 열심히 일만 하다가 죽기 위해서 태어났을까? CNN은 이 기사에서, 2014년 8월에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서울 시민들은 1일 평균 6시간도 채 자지 않음으로써 세계 대도시 시민들 가운데 가장 적게 잔다는 소식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네. 그러니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 일 수밖에…
 
한국은 공적연금제도가 매우 취약하고 자식들도 부모들을 부양하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노인들도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네. OECD 국가 중 가장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나라이지. 그러면서도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야. 2011년 65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남성 39.6%, 여성 21.4%로, OECD 평균인 남성 17.4%와 여성 8.4%보다 각각 22.2%, 13%가 높네. 또 2010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3%로 OECD 국가 평균치인 13.5%보다 3.5배 이상 높고,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80.3명으로 OECD 평균 20.9명보다 약 4배가 높네.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가장 가난하게 살고 가장  많은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라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일자리가 없으면 폐지라도 줍고 살 정도로 착한 노인들이 많은데도 왜 다른 나라 노인들에 비해 비참하게 살고 있을까? 결국 노인들의 가난은 노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뜻이네. 노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는 것이지. 그럼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까? 정치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거지. 그런데도 선거 때 약속했던 기초 연금 공약마저도 지키지 않은 정권과 정당을 지지하고 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고은 시인의 <그 꽃>으로 오늘 이야기를 끝내고 싶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2연 3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이지만 꽤 여운이 긴 시이지. 실제로 산에 다니다보면 올라갈 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도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경우가 많네. 내려올 때는 육체적으로 지치고 피곤한 상태인데도 오를 때 눈에 띄지 않은 꽃이 보이지. 난 이 시를 삶을 성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있네. 어떤 목적을 향해 매진하다 보면 우리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모두 다 놓치는 경우가 많지. 특히 노년에 이른 후에도 권력이나 돈에 눈이 멀면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네. 우리처럼 이순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은 이제 천천히 내려가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하네. 그러면 젊었을 때의 욕망이나 정열 때문에, 아니면 먹고 사는 일에 열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귀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그래서 내 눈에는 고희의 나이에서까지 권력이나 돈을 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련하게 보여. 어느 누구든 노욕은 추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거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난 이형기 시인이 <낙화>라는 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남은 기간 동안 아름다운 뒷모습을 준비하면서 살다가 돌아가고 싶네. 79세에 임명직 공직이라니…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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