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자네도 《장자》의 <제물론>과 《열자》나오는 원숭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를 알지? 중국 전국 시대 송(宋)나라에 살았던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를 좋아해 집에서 수십 마리를 기르고 있었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원숭이들의 식사량을 줄여야 했던 저공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네. 하루에 받는 도토리 양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이 성을 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데서 ‘조삼모사’란 말이 나왔다네.

이 우화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이 되고 있네. 하나는 똑똑한 사람이나 집단이 순진한 사람들을 교묘한 수법으로 속이는 걸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쓰이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양면을 동시에 보지 못하거나 궁극 실재가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걸 지적할 때 사용되고 있지. 두 번째 해석이 장자가 <제물론>에서 사용한 조삼모사의 의미야.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면 독선에 빠져서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체계나 이념만을 절대시하기 쉽게 된다는 걸 경계하는 이야기이지. 장자는 그런 이분의 세계, 분별의 세계를 넘어서, 서로 대립하는 양자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만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우리를 일깨우고 있네.

왜 갑자기 원숭이 이야기를 하냐고? 지금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논쟁을 보고 있노라니 저 조삼모사 이야기가 생각나더군. ‘누리과정’이 뭔지는 알고 있지?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 때 공약한 만 3~5세 아이들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복지정책이다. 세상이 하수상할 땐 옛 현자들의 글을 읽는 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일세. 그래서 장자를 읽다가, 정부 여당과 보수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수구세력들이 국가 예산이 부족하니 무상급식을 그만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서 첫 번째 의미의 조삼모사를 생각했고, 그들이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을 마치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고 가는 걸 보면서는 두 번째 의미의 조삼모사를 떠올렸네. 한정된 재원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복지가 어려우니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들이 참 후인무치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무상급식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보편적인 복지정책이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적어도 무상급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도 없었지. 오히려 그 무상급식의 대상을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려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다는 소식만 가끔 들었네. 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누리과정 예산을 누가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도교육청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하더군.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을 선언하고,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누리과정 확대를 약속했던 현 정부가 새해 예산안에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상황은 더 악화되었네. 급기야 지난 6일에는 전국의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경주에 모여 더 이상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예산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하게 되었네. 복지예산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진통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형국이지. 
그런데 왜 정부 여당을 후안무치하다고 비난하고 있냐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2007년 이후 주요 선거 때마다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네. 15년이 넘는 세월이야. 그러면서도 그 정책을 실시하는데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거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순진한 국민들을 속였으니 비난을 받아 마땅한 거지. 게다가 국가 재정에 문제가 있으면 증세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대통령과 정당의 책임지는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과잉복지’ 운운하며 무상급식이 문제라는 듯 얕은꾀를 부리고 있으니 후안무치하다고 욕하지 않을 수 없는 게지. 

맨 처음 '무상보육'을 약속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은 어린이 보육 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여성들을 위해 “만 3세부터 5세까지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겠다."고 거듭 약속했지. 2012년에 있었던 총선과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계속 '무상보육 전면 실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TV 토론 등에서 "아이 기르는 비용을 국가에서 적극 지원을 하겠다. 그래서 0세부터 5세 보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거듭 공언하네. 그럴 때마다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고 한 번 약속한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켰다."고 말하거나, 증세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면 재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넘어갔지. 하지만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집권 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공약을 지킬 예산이 부족하게 되자 자기들의 '무상 보육' 공약의 부담을 슬그머니 지방정부와 교육청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이에 교육감들이 반발하자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무상급식 정책을 문제 삼고 나온 거야. 15여 년 전부터 선거 때마다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없이 오직 표를 얻기 위해 무상보육 공약(空約)을 해놓고도 이제 와서 반성은커녕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으니 후안무치하다고 비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럴 때마다 난 2008년 3월 당시 한나라당의 공천 파동 때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제가 속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속을 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습니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웃을 수도 없고 씁쓸하기만 하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