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정부와 여당이 대통령 공약이었던 ‘누리 과정’ 예산 부담을 지방정부와 교육청에 떠넘기면서 시작된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 논쟁을 보면서 정치하는 분들이 참 한가하다는 생각을 했네. 우리 사회의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자네도 들어서 알고 있지? 노인문제는 몇 번 언급했으니 오늘은 저출산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세. 물론 두 문제가 서로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가족의 형태와 기능의 변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로 인한 고용불안정, 양육비용과 사교육비의 증가,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우리나라는 오래 전에 이미 ‘애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네. 2013년 현재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가임 연령기인 15~49세 여성이 특정 연도 1년간 출생한 자녀수)은 1.1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야. 1960년대와 70년대만 해도 4~5명의 아이를 낳던 우리 사회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를 기록하는 ‘초저출산 사회’가 되어버렸네.

그러면 불과 40여년 사이에 한국이 초저출산 사회로 변한 이유가 뭘까? 물론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을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 1990년대부터 나타난 만혼 및 결혼 기피 현상의 증가, 결혼 후에도 출산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부부의 증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워서 애를 낳지 않거나 하나 이상 낳지 않으려는 여성의 증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해서 나타난 결과로 이해해야겠지. 무슨 문제든 한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난 1990년부터 본격화된 노동시장의 변화와 고용불안정,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저출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게 결혼과 출산의 전제조건 아닌가? 그런 여유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결혼해서 애를 낳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이 더 이상한 게지. 경쟁적인 사교육비 지출로 자녀 양육과 교육에 드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결혼해서 자식들을 많이 낳으면 누가 키워주나? 본인들만 평생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그뿐인가? 애들 뒷바라지하느라 노년을 준비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늙어서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는데, 누가 많이 낳겠나? 아마 정부가 자녀 양육과 교육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한 출산율 제고는 힘들 거라는 게 내 생각일세.

통계청이 2010년 8월에 발표한 <소득과 자산에 따른 차별 출산력>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요인, 즉 소득과 재산이 출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네. 25~44세 유배우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보고서에 의하면,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평균 출생아 수도 많았네. 2003년부터 2009년까지의 평균 출생아 수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가 1.57명으로 가장 적고, 500만 원 이상 가구가 1.84명으로 가장 많았네. 가구 소득을 5분위로 나누어 보아도 소득이 많을수록 출생아수도 많더군. 25~44세 유배우 여성의 2003~2009년 7개년 평균 출생아수는 1분위(하위 20%) 가구가 1.61명으로 가장 적었고 5분위(상위 20%) 가구는 1.82명으로 가장 많았네. 2003년과 2009년의 소득 5분위별 평균 출생아수 차이를 살펴보면, 저소득층인 1분위가 0.22명으로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더군. 출산율 하락에 저소득층 가구들이 가장 많이 공헌했음을 시사해주는 통계일세. 그러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하위 계층의 경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거지.

총자산과 총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 규모도 평균 출생아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네. 총자산과 순자산이 많을수록 평균 출생아수가 많았고, 주택 점유 형태도 평균 출생아 수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냈더군. 모든 연령대에서 자가 가구가 전월세 가구보다 더 많이 낳고 있음을 보여주었네. 25~44세 유배우 여성의 경우 자가 가구의 평균 출생아수는 1.90명으로 전월세 가구의 1.68명보다 0.22명이 더 많았네. 주거 안정이 출산력 제고에 중요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지. 

4년 전에 정부 기관에서 발표한 저런 보고서를 놔두고 계속 저출산의 심각성만 애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문제가 뭔지 알았으면 치밀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을 해야지. 다른 무엇보다도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안정된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네.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혼인적령기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어도 시간직 등 비정규직이거나 고용불안정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누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우리 사회가 정말로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나서 20 · 30대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 향상 방안을 마련해야 하네. 젊은이들의 경제적인 안정 없이는 어떤 출산율 제고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네. 결국 문제는 ‘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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