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농성 중인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42일.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밤을 보낸 날이다.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이하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7월 9일부터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낮과 밤을 보내고 있다. 씨앤앰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지난 12일엔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20m 높이의 옥외전광판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했고, 19일엔 정부의 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에 면담요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최악의 근무여건으로 내몰린 끝에 거리로 나온 이들은 이처럼 거리에서조차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통해 본 대한민국 비정규직의 현실

▲ 고공농성 중인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
씨앤앰 비정규직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대표한다.

각 권역별로 나뉘어있던 케이블 방송 사업체를 자본이 집어삼키는 사이 노동자들의 환경은 갈수록 악화됐다. ‘원청’의 정규직이었던 이들은 어느덧 하청에서도 ‘비정규직’이 됐고, 심지어 재하청은 물론 ‘개인사업자’가 되기도 했다. 근무강도는 더욱 높아지는 반면 월급은 줄어들었고, 위험천만한 일을 하며 다치더라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씨앤앰 케이블 TV의 설치 및 AS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루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건수’를 채워야 그나마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저녁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은 언감생심이었다.

노동의 강도와 위험성, 스트레스도 높았다. 혼자서는 무리인, 위험천만한 일이 계속됐다. 높은 전봇대나 옥상, 지붕은 물론 아슬아슬한 담벼락 위에 올라가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러나 헬멧 같은 안전용품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혹여나 다치는 일이 발생하면 더욱 고달파졌다. 씨앤앰의 일을 하다 다쳤는데도 씨앤앰은 물론 하청업체조차 책임을 회피했다. 오로지 ‘다친 사람’의 책임이었다.

▲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하고 위험한 근무 환경.
물 한잔을 건네는 좋은 고객도 많았지만 심부름 등 황당한 요구를 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내는 고객도 있었다. 그래도 늘 친절한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해피콜에서 점수가 깎이기라도 하면 본인은 물론 팀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의 어깨에는 여기에 ‘영업’ 부담까지 얹혀졌다. 특히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치를 내세우고, 이를 이루지 못하면 월급을 깎기 일쑤였다. 때문에 어떤 때에는 고객을 속여 특정 상품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일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다. 씨앤앰과 하청업체가 ‘월급 깎기’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각종 빌미를 잡아 월급을 깎았고, 심지어 같은 팀끼리 ‘연좌제’가 적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비정규직이었다. 당장의 생계로 인해 회사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고, 속절없이 ‘착취’를 당해야 했다. 그렇게 이들은 ‘을 중에서도 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 비정규직 문제 터지면 하청업체 뒤에 숨는 ‘원청’

결국 참다못한 이들은 ‘노조’라는 것을 설립해 힘을 모았다. 그러자 더 큰 탄압이 다가왔다. 노사교섭 난항에 항의하며 파업을 실시하자 씨앤앰 하청업체들은 계약만료를 이유로 109명을 해고했고, 직장폐쇄까지 단행했다. 이들이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그때부터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는 거리를 지켰다. 하지만 ‘원청’ 씨앤앰과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과정과 직장폐쇄를 푸는 과정에 씨앤앰이 하청업체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지만, 씨앤앰은 계속해서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의 문제”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농성 중인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렇게 14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광화문을 지키고 있다. 여름과 가을이 가고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언제 집과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씨앤앰이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며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생기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5개월 가까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씨앤앰이 대화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동안 쌓인 갈등의 골이 깊다. 김영수 지부장은 “최근 김병주 MBK 회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다보니 이를 막기 위해 씨앤앰이 서둘러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미 5개월 가까이 진행된 씨앤앰 사태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는 것이 노동자와 회사에게 바람직하다. 김영수 지부장은 “일단 대화를 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시작이다. 사측이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통한 해결에 임한다면 노조 역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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