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코오롱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이다. 시간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계 23위였던 코오롱은 경영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이후 정리해고 대신 임금을 30% 삭감하기로 합의했지만, 2005년 2월 코오롱은 끝내 정리해고 칼을 휘둘렀다.

코오롱이 휘두른 정리해고 칼은 4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내쫓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코오롱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78명의 노동자를 강제로 정리해고 했다.

하루아침에 회사로부터 버려진 78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이후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생계로 인해 더 이상 투쟁을 함께하지 못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12명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만큼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초기에는 손목을 긋거나 회장 집을 점거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감옥신세까지 져야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의 이름난 산에서 펼쳐진 선전 활동이다. 코오롱 등산복이 인기가 높은 점을 역으로 착안한 것인데, 반향이 컸다. 코오롱이 전국 산을 대상으로 가처분신청을 하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이번엔 단식투쟁까지 시작했다.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코오롱정투위), 그리고 최일배 위원장의 이야기다. <시사위크>는 지난 25일, 과천 코오롱타워를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 “10년은 넘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단식투쟁 시작했다”

▲ 최일배 코오롱정투위 위원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높이 치솟은 코오롱타워 건물 앞에는 너무나 대비되는 초라한 천막이 자리 잡고 있다.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과 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 박선봉 사무차장이 단식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천막이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지난 25일, 천막 밖에는 ‘단식 21일차’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의 단식은 28일까지 24일째 계속 진행 중이다.

코오롱타워 앞 단식투쟁 천막에서 최일배 위원장을 만났다. 20일이 넘도록 곡기를 끊었지만, 최일배 위원장의 얼굴엔 지친 기색보단 강한 의지가 돋보였다. 10년을 싸워온 그의 강한 의지를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최일배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하루만 굶어도 힘든데 어느덧 20도 훌쩍 넘겼다. 건강은 괜찮으신가.

“요즘 인식이 단식투쟁을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30일 정도는 다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더라(웃음). 그런데 참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식투쟁을 시작할 때 이미 마음을 끈질기게 먹고 버티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지로 버티고 있다. 주변에서 건강을 챙겨주시고 있는데,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 어느덧 1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이렇게 힘든 투쟁을, 이렇게 오래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결심과 마음이 있었기에 이렇게 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명예라고 하면 조금 거창할지 모르겠다.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코오롱에서 일하며 가정을 이루고,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회사에 대한 고마움도 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고맙다’고 말하며 웃으며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는 마치 쓰레기 버리듯 우리를 내쫓았다.”

▲ 지난 5일부터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오른쪽)과 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 박선봉 사무차장(왼쪽).
- 당시 78명이 갑작스럽게 해고됐다. 그리고 지금 12명이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

“결국은 생계가 문제다.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도 생계 때문에 일을 병행하며 고생하고 있다. 함께 투쟁하지 못하는 이들도 종종 연락하며 응원을 전해주곤 한다. 물론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코오롱에서 해고된 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대리운전 일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다.”

▲ 단식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코오롱타워 앞 천막.
▲ 단식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코오롱타워 앞 천막.
- 오늘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시민들이 코오롱 해고자들을 돕고 있더라.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코오롱타워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현수막과 학생들이 보낸 편지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많은 힘이 될 것 같고, 책임감도 더 무거워질 것 같다.

“너무 감사하고 많은 힘이 된다. 온라인과 SNS로도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최근엔 과천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 책임감도 당연히 더 커졌다. 처음엔 단순히 내 일이었다. 내 복직과 내 생계, 내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내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포기하는 것은 우리를 지지해주고 도와주신 분들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 전보다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초기에는 주요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관심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장기화되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경북 구미에서 투쟁을 이어갔지만, 지방이다 보니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2년 5월부터 이곳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고, 불매운동과 등산선전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나마 조금씩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

특히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마치 능력이 없거나 문제가 있어서 쫓겨난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갈수록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노조탄압 수단으로 사용하고, 또 그런 일이 단순히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됐다. 더불어 정리해고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우호적으로 변했다. 정리해고를 당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대신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물론 ‘투쟁’이라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보는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 과천시민대책위원회가 코오롱 타워 앞에 내건 현수막.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코오롱 사태’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맞다. 아직 부족한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이웅열 회장이 10년 동안 철저하게 이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 코오롱 정리해고 사태를 촉구하는 현수막들.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일반적인 회사라면, 회사 이미지 때문에라도 벌써 해결을 위해 어떤 움직임이든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코오롱은 이웅열 회장의 지분과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지난번 마우나리조트 사고 때를 보자. 당시 이웅열 회장은 즉각 경주에 내려가 사과하고 보상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물론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급속도로 퍼지자 재빨리 나선 것이다. 해고자 문제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 여론의 관심, 즉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 과거에 코오롱이 ‘대화하는 척’을 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언론에서 이 일이 크게 보도되고,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때였다. 그러나 이후 여론의 관심이 작어지면서 사태는 장기화됐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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