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박병모:현 광주뉴스통 발행인, 전 광주 FC 단장, 전 전남일보 편집국장
[시사위크] 요즘 ‘호갱(호구+고객)’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어리숙하고 바보 같아서 남한테 쉽사리 이용만 당하는 사람을 일컬어 ‘虎口(호구)’라고 부른다. 그 명사에다 ‘고객’을 합성시킨 단어다. 

그러니까 딱 두 달 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전 국민은 ‘호갱’이 됐다는 점에서 기분이 잡쳤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값주고 휴대폰을 산 소비자들은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꼴을 당했기에 ‘호갱’이 된 거나 다를 바 없기에 그러하리라. 정부가 뒤늦게 이통사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고객들로서는 조롱을 당했다는 점에서 쉽사리 화가 풀리지 않는다.

열을 받은 김에 한때 ‘사이버 망명’이 유행했던 것처럼 소비자들로서는 해외직구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호갱 탈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가 내년 1월1일부터 2,000원씩 인상키로 합의한 담배값 관련 법안도 국민건강을 이유로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골초’들 입장에서 볼 땐 ‘서민을 호갱으로 아는 증세’라고 반발한다.
 
소비자들이 정부나 기업의 ‘호갱’이 되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국제 호갱’이 되는 사례도 불거졌다. MB정부가 해외자원개발 과정에서 수십조 원의 국고 손실을 끼친 것도 모자라 자원개발 계약서에 서명해줘 고맙다는 보너스로 국민혈세를 자그만치 3,300억원을 줬다는 것이다. 치적자랑도 좋지만 대통령이란 본분을 망각한 채 과거 건설회사 사장 때 한 짓거리를 했다면 흡사 ‘ㅇ 주고 ㅇ 맞는 꼴’이 된 격이다. 부끄럽기만 하다

이처럼 단말법을 계기로 촉발된 ‘호갱 논쟁’은 비단 소비자와 기업,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예외는 아닐 성 싶다. 요즘 새정치연합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어찌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통사들이 ‘고객 가치 향상’을 내걸었던 것처럼 개혁과 변화를 통한 ‘정치혁신’을 외쳐댔다.

하지만 이통사가 잘 챙겨줄 것으로 믿고 다달이 청구되는 요금을 자동이체를 통해 꼬박꼬박 낸 가입자, 즉 ‘호갱’(호구 고객)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듯이 새정치연합도 마찬가지였다.

이통사들의 호갱을 굳이 분류하자면 가장 많은 층이 중·장년과 어르신들인데도 이들이 약삭(?)빠르지 못하다는 점을 악용해 과거의 높은 요금제를 스스로 바꿔주거나, 바꾸라고 권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고객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신상정보를 들여다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렇게 둘러대기는 내년 2월8일 전당대회에 당권주자로 나설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등 이른바 ‘빅3’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새정치연합이 난파된 채 뒤뚱거리고 있는 틈새를 비집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국민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계파정치에 함몰돼 있다.

비대위원은 당권에 도전해서는 안된다는 당원들의 봇물 터진 요구를 묵살한 채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그 자리에 눌러앉아서 당원들을 ‘호갱’으로 여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 주 새정치연합의 텃밭인 호남에 일제히 내려와 러브콜을 해댔다. 

우선 당내 최대계파인 친노 그룹의 좌장인 문재인 의원이 지난달 28일 나주혁신도시와 기아차 광주공장을 방문해 호남 민심잡기에 나선 것은 예사롭지가 않다.

분권성장과 균형발전을 테마로 한 방문이라고 하지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당권도전과 관련, “나갈 똥, 말 똥 고민하고 있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당권문제는 개인을 앞세우지 않고 당에 도움 될 것인지를 판단하겠다”고 한자락 깔았지만, 광주시민들은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의 행보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명색이 대권에 한 번 도전한 사람으로서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 지금쯤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도 있을 법 한데 좌고우면한다는 데서다.

‘호남은 한번 대권에 도전한 사람은 두 번 다시 밀어주지 않는다’는 여론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내보일 수 있는 것은 그동안 호남민들이 자신에게 밀어준 확실한 지지에 감사한다며 그에 대한 보답으로 당권이 아닌 더 통 크고, 사심 없는 정치를 하겠노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역사상 호남에 대한 차별과 홀대가 이처럼 심한 적도 없다”며 박근혜 정부를 겨냥하며 호남인들을 슬슬 부추기기 시작한다. 자신은 참여정부시절 호남홀대에 가장 앞장선 사람이라는 점을 망각한 듯 싶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방선거와 재보선 과정을 거치면서 현 정권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참패를 한데 대한 깊은 사과나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해버린 호남정치 복원에 대해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기에 문재인은 대권이나 당권 등 자기 욕심을 채우거나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는 호남을 위해 뭐든지 다해 줄 것처럼 해놓고는 뒤돌아서면 본체만체도 하지 않은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말로는 그가 호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호남인을 표나 찍어주는 ‘호갱’으로 여기지 않나 싶다. 

이번 당권도전에 나선 박주선 의원은 특강을 통해 “문재인은 대선과정에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몰아준 광주시민들에게 그리 고마워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문재인 같은 ‘양자론’으론 정권교체를 결코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몇 일 전 서울에서 나눔과 자원봉사로 민간차원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창립한 ‘(사)민간복지포럼’ 이사장이자 당권도전을 선언한 김동철 의원도 오죽 했으면 문재인과 박지원을 향해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 2선 후퇴 내지는 용퇴하라”고 했겠는가.

앞서 지난달 26일 전남대에서 '호남정치 복원,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박지원 의원은 "당권-대권 분리가 호남 민심이자 당이 사는 길"이라고 문 의원이 출마를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문재인에게 각을 세웠다고 하지만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박지원은 1990년대를 풍미한 노회한 정치인으로 새정치를 지향하는 호남정서와는 멀게만 느껴진다.

기실 박지원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고 이어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계가 합쳐져 통합민주당으로의 바뀌는 과정에서 지금의 친노 세력이 자리매김을 하는데 단초를 제공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재·보선 때 화두가 됐던 이른바 ‘올드보이’에 해당된다는 얘기다.

지난달 25일 전북대에서 '정치와 국민의 삶'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정세균 의원도 과거 당대표를 거듭 하면서 이름도 요상한 ‘배심원제’를 동원해 자기사람을 심고, 과거와는 달리 친노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책임정치 구현차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도 저도 아니라면 누가 야당을 짊어지고 갈 것인가. 그에 대한 응답은 현재 240만명에 이른 새정치연합 당원들의 가슴에 있다. 그들은 호남정치의 복원을 통해 아니 대한민국의 정치,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를 할 사람은 누군가를 찾고 있다.

키워주고 안아주고 밀어주면 큰 재목으로 커나갈 정치인은 얼마든지 많다. 적어도 ‘빅3’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겨울의 길목에서 마지막 잎새처럼 염치없게 매달려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기득권과 계파이익을 버려야 만이 그 빈 공간에는 올 곧고, 미래가치가 있는 후배 정치인들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야 비로소 내년 2월 창당대회를 계기로 겨우내 눈보라와 한파를 이겨낸 새싹들이 비집고 나와 화려하게 새봄을 맞을 채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남인을 ‘호갱’으로 여기는 정치인은 그래서 자연스레 도태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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