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세상이 하 수상할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데, 사묘지서(社廟之鼠)라는 사자성어가 눈에 번쩍 띄더군. 무슨 뜻이냐고?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이 안영(안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큰 근심거리가 무엇이냐고 묻자, 안영이 “가장 큰 근심거리는 ‘사당의 쥐(社鼠)’입니다.”라고 대답하네. 안영은 왜 이런 대답을 했을까? 사당은 신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곳으로 보통 나무와 흙으로 만들지. 그런 사당에 쥐들이 벽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고 산다고 생각해 보게. 그런 쥐들을 잡기 위해서는 연기를 피우거나 물을 부어야 하겠지. 하지만 불을 잘못 피우면 사당의 기둥이 타고, 물을 잘못 부으면 벽이 무너지네.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 그게 왜 나라의 가장 큰 근심거리냐고? 나라에도 그런 사당의 쥐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임금이 가까이 두고 아끼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는 거지. 중국 고전인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일세.

언제 어디서나 권력자 주위에는 사당의 쥐 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네. 사당이 소중하다는 걸 악용해서 사당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이 나타나지. 그런 쥐들은 자신들을 잡으려다 잘못하면 사당마저 무너트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여 스스로 권력자 행세를 하게 되네. 권력자가 능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권력자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약점들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이런 쥐들은 더 시끄럽게 날뛰지. 어렸을 때 허름한 시골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밤마다 천장을 가로지르며 뜀박질하는 쥐들 때문에 잠을 설친 기억들을 갖고 있을 거네.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쥐들이 권력을 농단하면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국민들의 삶도 힘들어지네. 또 그런 쥐들이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떠들고 돌아다니니 온 세상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네. 이런 쥐들은 권력의 행사가 불투명하게 이루어질수록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

요즘 정윤회 씨와 이른바 청와대 ‘3인방’의 국정농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건 자네도 알고 있지? 그 쥐들의 주군께서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애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는데, 정말 창피한 일일세. 비정상적인 걸 정상화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정부에서 옛 왕조시대에나 가능한 짓들이 은밀하게 행해지고 있다니 정말 부끄러운 대한민국일세. 앞으로 더 많은 진실들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봐도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사당의 쥐’가 있는 건 틀림없는 것처럼 보이네.

재미있게도 그들이 자주 가는 모임 장소가 강남의 고급음식점이었다더군. 쥐들이니 음식점을 찾을 수밖에 없지. 그런 걸 보면 그들도 이미 자기들이 ‘사당의 쥐’ 같은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뛰고 놀아도 누구도 자기들을 내쫒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저기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놓고 돌아다닐 수 없겠지.

청와대의 쥐들이 그렇게 설칠 때 서울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고양이들은 뭐했는지 궁금하더군. 요즘은 고양이들도 약삭빨라서 주군이 예뻐하는 쥐들은 건드리지 않나 보네. 잘못 건드렸다가 자신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거지. 쥐를 잡기는커녕 쥐들에게 잘 보이려고 재롱을 부리는 고양이들만 살아남는 세상일세. 아직도 본능적인 야성이 남아 있는 고양이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추방을 당하고 있네. 

‘사당의 쥐’를 이야기하다보니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이 생각나는군. 진나라의 환관이었다가 승상이 된 조고(趙高)라는 인물이야. 조고는 진시황의 조서를 거짓으로 꾸며 맏아들 부소를 몰아내고 우둔한 막내아들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네. 그런 다음 조고는 자신이 황제가 되려고 하지. 그는 먼저 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신하들부터 제거할 음모를 꾸미네. 어느 날 조고는 사슴을 끌고 황제에게 나아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말을 가져왔으니 타보시라고 말하네. 아무리 우둔한 황제라고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지. 그래서 “승상, 짐에게 농담하는 거요? 사슴이 분명한데 어떻게 말이라고 부른다 말이오.”라고 응답하면서 웃지. 조고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폐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대신들에게 물어보자고 말하네. 신하들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조고의 속셈을 간파한 소수의 정직한 대신들만 말이 아니고 사슴이라고 말하네. 조고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은 비굴한 표정으로 분명히 천리마라고 맞장구치고… 그 후 진실을 말했던 신하들은 조고가 뒤집어씌운 죄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옥에 갇히게 되네. 물론 진나라는 유방의 한나라에게 망하고 말지. 여기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지록위마’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네. 세상이 혼탁하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이 꼭 나타나네. 지금 우리가 그런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우울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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