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지난해 4월 28일, 전국 문구 생산·유통인들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전국 문구 생산·유통인 생존권 호소 집회'를 열고 학용문구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문방구의 식품판매금지 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안충영·이하 동반성장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해 심의하고, 심규품목 지정 및 해제품목 등을 발표했다. 11일 동반성장위는 막걸리, 금형(프레스·플라스틱) 등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하고, 세탁비누 등 11개 품목은 ‘상생협약’으로 바꿨다. 또 아스콘이나 부동액 등 3개 품목은 ‘시장감시’를 하기로 했다. ‘상생협약’이나 ‘시장감시’ 등은 사실상 중소기업 적합업종 해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해제 품목이 늘어난 셈이다. 일각에서는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 적합업종 품목 지정 감소 ‘왜’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상생’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생계형·생활형 소상공인들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취지는 좋았다. 모두가 공감했다. 물론 사업영역을 축소해야 하는 대기업 입장에선 “시장원리에 역행한다”며 반대했지만, 여론 눈치 때문이든 상생 취지에 공감해서든 어쨌든 대기업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동참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대·중소기업 양극화를 해소하고 골목상권 보호 및 육성을 목표로 일부 품목에 한해 대기업 진입을 막기 위해 지난 2011년 만들어졌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부작용이 만만찮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효성 논란이 재점화되는 이유다.

실제 지난 11일 동반성장위는 막걸리, 금형(프레스·플라스틱) 등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하고, 세탁비누 등 11개 품목은 ‘상생협약’으로 바꿨다. 또 아스콘이나 부동액 등 3개 품목은 ‘시장감시’를 하기로 했다. ‘상생협약’이나 ‘시장감시’ 등은 사실상 중소기업 적합업종 해제를 의미한다.

LED 조명, 국산콩 두부 등 나머지 51개 품목에 대해서도 협의가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해제될 품목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이 줄어든 것은 제도의 실효성과 부작용 논란 때문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적합업종 선정이 정작 중소기업 보호와 경쟁력 강화에 별 도움이 안 됐다는 얘기다.

이번에 폐지가 확정된 막걸리만 해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확정되면서 중소업체들이 대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성장은커녕 되레 매출이 감소하거나 영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자본력이나 유통망 확보, 마케팅 등에 취약한 이들 영세 업체로서는 경쟁력을 갖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막걸리 시장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된 지 1년 만에 15% 가량 줄었다.

▲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중소기업 적합업종 공청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 중소기업 자생력 키우고, 가시적 효과 창출할 수 있는 방안 모색 절실

한참 논란이 뜨거웠던 ‘두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선정된 이후 대기업이 손을 떼자 국산 콩 농가들이 소비가 줄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놓인 것. 자금력이 여의치 않은 중소업체들이 국산 콩 대신 값싼 외국산 콩을 사들이면서 국산콩 가격이 하락하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산 콩(백태 1㎏)의 지난 11월 도매가는 3,995원으로 1년 전보다 23%, 지난해 평균보다는 36% 떨어졌다. 수확기 콩 가격이 3,000원대로 내려앉은 것은 6년 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정작 중소기업 위한 제도가 중소기업이나 골목상권을 위한 것이 맞느냐는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대기업 참여를 강제한 것인 오히려 시장 규모를 축소시키고, 되레 외국 기업들의 반사이익을 늘렸다는 지적이다.

물론 좋아진 부분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를 보면 중소기업 42%가 “제도 덕택에 경영이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의외의 이해 갈등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기본 취지는 철저히 유지하되, 보다 실질적인 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에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회장은 지난 6월 개최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현재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와 같이 처음부터 선을 긋고 중소기업 진입만을 허용하는 방식은 과거 ‘고유업종제도’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것과 같이, 실패의 길을 걷게 될 것이 자명하다”면서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 역시 이날 세미나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진흥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중소기업의 보호가 아닌 진흥이 궁극적 해결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에 다양한 기회를 주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보호가 아닌 개방성, 공정성, 투명성이 대기업에게 요구하는 합의 사항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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