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공포된 ‘국가계약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에 담합 건설사들에 대한 입찰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4대강사업 등 각종 대형사업에서 담합 비리를 저지른 건설사를 향해 질타를 퍼붓고 있는 시민단체 등의 모습으로, 해당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건설업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달 공포된 ‘국가계약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에 담합 건설사들에 대한 입찰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다.

개정 전 시행령에 따르면 담합으로 적발된 건설사들은 과징금을 부과 받고, 국책사업 입찰에 일정기간 참여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새로 개정된 시행령에는 부정당업자라도 일정한 금액의 과징금을 내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담합 비리 건설사들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하고 있다.

◇ 과징금 내면 입찰제한 해제?

논란의 핵심은 지난달 4일 공포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일부개정령’ 중 “제76조의2 제2항 단서를 삭제한다”는 내용이다. 노컷뉴스 단독보도에 따르면 국가계약법 시행령 76조의2제2항은 담합 비리 건설사의 입찰참여 제한에 관한 내용으로, 이번 개정령을 통해 이 같은 단서규정이 삭제됐다.

좀더 쉽게 말해, 과거에는 해당 규정에 따라 담합으로 적발된 건설사의 경우 국책사업(공공사업)에 입찰 자격이 제한되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일정한 금액의 과징금을 내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경된 것이다. 게다가 부칙에서는 내년 1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위반 건도 소급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과거 입찰담합으로 적발된 건설사들도 과징금만 내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개정령에는 ‘단서조항’이 달렸다. 국가계약법에서는 경쟁 입찰에서 2인 미만이 입찰해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로 제한했다. 사실상 2개 업체 미만이 입찰에 참여해 유의미한 입찰경쟁이 불가능할 경우, 부정당업자라도 일정한 금액의 과징금을 내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와 시민단체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건설업계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설사는 많지 않다는 입장이고, 반면 시민단체는 담합을 저지른 재벌 건설사들에게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또 다시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건설업계에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설사가 극히 드물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한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일단 입찰담합으로 적발이 되면 과징금이 총 공사비의 최대 30% 가까이에 이르는데, 여기에 또 과징금을 물고 공공사업 입찰에 응할 건설사가 몇이나 될 지 의문”이라면서 “이번 개정령을 검토해본 결과, 방위산업이나 원자력 공사, 터널이나 교량 같은 고난이공정 입찰 등에 해당되는 사안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 시민단체 일각에선 지난달 공포된 시행령을 두고 이미 담합으로 불법을 저지른 건설사들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함.
◇ 박원석 의원 “4대강 입찰담합 건설사에 면죄부 제공”

입찰 제도를 운영하는 기획재정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핵심은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을 경우’로, 이럴 경우는 거의 없고 방산 등 특정분야에 한정될 것이기 때문에 국내 대형건설사들에 대한 면죄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선 이미 담합으로 불법을 저지른 건설사들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승섭 경실련 국책감시팀 부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가 건설경기가 안좋으니 담합을 하더라도 최대한의 수익을 보전해주려 하는 것”이라면서 “일각에서는 방산이나 국방 등의 분야에 한정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최저가 입찰제가 많아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달 4일 공포된 개정령에도 “입찰참가자격 제한과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여 사업자의 부담을 덜고 사업자가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적시돼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 역시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 등에서 입찰담합을 저지른 대형 건설사들에게 마지막 면죄부를 줬다”면서 이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가 시장경제에 반하는 담합을 용인하며, 국가예산 낭비를 방치하고, 공정위·감사원은 물론 검찰에 기소돼 사법부에서 총제적인 비리가 최종 확인된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줬다는 국민적 분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입찰담합으로 공정위가 국내 건설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은 총 16건, 8,093억원으로 집계됐다. 담합 비리로 입찰 제한을 받는 건설사는 60개에 달하고, 상위 30개사 중에서는 26개사가 제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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