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롯데호텔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선 20대 청년을 ‘일회용품’처럼 쓴 뒤 해고한 것으로 드러나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롯데호텔은 석 달 동안 매일매일 무려 84번의 ‘일일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해고에 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 롯데호텔에서 해고된 김씨와 청년유니온,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참여연대가 지난 16일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취업규칙 보여 달랬더니… “나가”

서울에서 타지생활을 하는 김모(22) 씨는 ‘돈’이 필요했다. 학비는 물론 방값과 각종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자리 구하기에 나선 김씨는 롯데호텔 주방보조 일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장기 근무자 우대’라는 문구가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석 달여 뒤인 지난 3월, 김씨는 더 이상 롯데호텔에서 일할 수 없게 됐다. 롯데호텔이 김씨의 취업을 알선한 인력공급업체에게 더 이상 고용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었다. 김씨는 석 달 동안 일하면서 자신이 어떤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지 여러 의문이 들었다. 이에 김씨는 롯데호텔에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했다. 그러자 롯데호텔은 취업규칙 열람을 거부하고, 며칠 뒤 김씨를 해고했다.

김씨는 부당해고라며 항의했다. 하지만 롯데호텔 측은 김씨가 ‘일일근로계약서’를 매일 갱신해온 ‘일용직’이며,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김씨는 롯데호텔에 출근한 84일 모두 ‘일일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석 달 동안 꾸준히 주당 5일, 평균 47시간을 일했지만,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일용직’ 형식이었던 것이다. 김씨는 자신이 매일 작성한 일일근로계약서가 이런 식으로 악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김씨는 롯데호텔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노동위원회에 제소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회사는 정직원 또는 무기계약직을 해고할 때 1개월 전에 미리 통보해야 한다. 기간제근로자의 경우엔 예정 기간보다 일찍 해고할 경우 역시 1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 다만, 기간제근로자는 별다른 약속 없이 계약기간이 만료될 경우 자동계약종료로 간주한다. 김씨는 자신이 석 달, 84일간 정기적으로 근무했다는 점을 들어 ‘무기계약직’이라고 주장했다.

허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김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중노위의 판정은 지노위와 달랐다. 김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 중노위 “84일 일한 김씨, 일용직으로 볼 수 없다”

▲ 롯데호텔에서 해고된 김씨.
우선 중노위는 김씨가 단순한 일용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계약서상으로는 ‘초단기근로자’지만, 주 15시간 이상 일했기 때문에 일용직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계약서상 일단위로 기간을 정한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무기계약직)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에 따라 중노위는 롯데호텔에 김씨를 원직 복직키시고, 미지급 임금을 지불하라고 판정했다.

허나 이와 관련해 롯데호텔 측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입장도 밝힐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롯데호텔은 해당 사안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도록 막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김씨를 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골리앗’ 대기업과 싸운 김씨는 지난 16일 청년유니온,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참여연대 등과 함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김씨는 송용덕 롯데호텔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사장님은 저를 기억 못하겠지만, 저는 사장님의 도장이 찍힌 근로계약서를 84번이나 작성했다”며 “타지에서 생활하는 저에게 롯데호텔은 비록 비정규직이어도 괜찮은 일자리였다. 하지만 롯데호텔이 원직 복직을 미루고 있어 큰 상처와 경제적 어려움을 입고 있다. 롯데호텔은 중노위의 판정을 인정하고, 복직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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