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회 문건 파문의 검찰수사가 마무리 수순을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 수사가이드라인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전망이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정윤회 문건 파문을 수사 중인 검찰이 문건 내용을 ‘허위’로 규정하고,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박관천 경정을 긴급체포하면서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들었다. 검찰은 이르면 연말 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밝혔다. 최초 <세계일보>의 보도로 부터 약 20여일, 담당검사가 배정된 지 약 15일여 만이다. 이례적인 빠른 수사속도다.

검찰은 그간 2가지의 죄목을 입증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했다. 하나는 정윤회 씨를 비롯한 청와대 비서관들이 고소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이고, 다른 하나는 청와대 문서를 유출했다는 점에서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죄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은 세계일보가 보도한 문건은 ‘허위’로 잠정결론 내리고 세계일보가 정윤회 씨 등 고소인들에 대해 ‘음해할 목적’이 있었는지 검토 후 기소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공공기록물 유출과 관련해서는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밖으로 유출하고 이를 한모 경위가 복사, 그리고 숨진 최모 경위가 언론사에 전달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에 검찰은 지난 16일 박관천 경정을 긴급체포하고 사흘째 추가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 인사개입이나 국정농단은 수사나 조사로 밝혀진 전례 없어…

그러나 여전히 의혹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시사위크>는 검찰 수사로 정윤회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한계가 있는 이유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물증이 없는 정치적 문제에 대해 검찰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역대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농단 문제도 ‘금품수수’라는 명확한 증거와 이에 대한 죄목을 적용한 것이지, 국정개입에 따른 처벌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사개입이나 국정농단이라는 것은 매우 사실유무를 밝히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김현철 씨가 처벌 받은 것은 구체적인 이권과 관련된 금품수수였다. 역대 정권에서 인사개입 내지는 국정농단 관련 수사나 조사를 통해서 밝혀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문건의 진실공방 뿐 아니라, 유출혐의와 관련해서도 검찰 수사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당초 유출혐의에 관한 부분은 유출사실만 밝혀내면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의혹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법 적용의 문제와 처벌의 공평성, 그리고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모 경위와 숨진 최모 경위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이어진 것.

◇ 유출혐의 입증과 법 적용도 의문 투성

당초 검찰은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었다. 문제는 ‘정윤회 동향’ 문건이 대통령 기록물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당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한 바 있다. 만약 검찰이 동법을 적용할 경우, ‘찌라시’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는 셈이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2조에 따르면 대통령 기록물이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보좌기관, 자문기관, 경호기관이 생산 및 접수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및 물품이다. 문제의 문건이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이 있는 문건인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인사는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모든 문건이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된다”고 전했다. 박범계 의원도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민심동향이나 사람관련 문건은 이지원에 등록하지 않고 정권이 바뀌거나 청와대에서 나오게 되면 폐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와 공무상 비밀 누설죄를 박 경정에게 적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찌라시’로 치부한 내용이 과연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지 논란이고, 더구나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을 적용하기에는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앞서 검찰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 대해 공공기록물법을 위반혐의를 적용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다. 박 경정을 긴급체포한 것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와 숨진 최모 경위에 대한 수사과정도 의문이다. 검찰은 앞서 한 경위가 복사하고 전달한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현재까지의 범죄 혐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구속사유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즉 검찰의 혐의 입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원의 영장기각 후 풀려난 최모 경위는 억울한 심경을 밝힌 유서를 남기고 지난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JTBC는 한모 경위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혐의를 인정하면 기소는 하지 않겠다”는 회유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에 대해 “직접 당사자의 변호인에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JTBC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JTBC는 관련 녹취록이 있다고 보도해 문제의 여지를 남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에서는 검찰이 청와대 감찰결과를 기초로 ‘수사가이드라인’에 맞춰 짜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국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63.7%는 검찰조사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작 28.2%만이 검찰의 수사를 신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4일 발표, 성인남녀 천명 대상, RDD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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