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한항공이 이렇게까지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된 데에는 처음부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위기관리’에 있어,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것이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5일.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났는데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가라앉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땅콩’에서 시작된 사건은 이제 오너 딸에 대한 ‘구속영장’ 얘기로까지 확대된 상태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한항공이 이렇게까지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된 데에는 처음부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위기관리’에 있어,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것이다.

◇ 여론 무시하고 무사안일하게 대처하다 ‘골든타임’ 놓쳤다

‘땅콩회항’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지난 열흘 동안 대한항공이 이 사건을 대응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기업의 위기관리’ 측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패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대한항공은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을 놓쳤다. 대한항공은 땅콩회항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가고 무려 15시간이 지나서야 공식 입장을 내놨다. 여론은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진 뒤였고, 그마저도 일방적인 보도자료 배포 형식을 취했다.

특히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은 화를 키웠다. ‘사과문’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정작 내용은 사과가 아닌, 사무장이나 기장 탓으로 사건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이 지나쳤다”면서도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제기와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엄밀히 얘기하면 ‘사과문’이 아니라 ‘해명 보도자료’였던 셈이다.

게다가 조현아 부사장의 직접 사과도 아니었고, 보도자료에서 밝힌 일부 내용들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진정성마저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컨설팅업계 전문가들은 기업 위기관리 제1원칙으로 ‘타이밍’을 꼽는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얼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코오롱은 지난 2월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당시, 사고 발생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웅렬 회장이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비판여론을 잠재웠다. 현대캐피탈 정태영 사장 역시 지난 2011년 고객정보 해킹 사건이 발생하자 해외출장을 접고 즉시 귀국해 사태해결을 위한 계획과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논란의 불씨를 일찍 껐다.

그런 점에서 타이밍을 놓친 대한항공의 초기대응은 더욱 뼈아프다. 문제는 이후에도 대한항공의 위기대처 전략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태수습 차원에서 조 전 부사장이 ‘보직사퇴’를 발표했지만, ‘무늬만 사퇴’라는 역풍을 맞았던 것. 조 전 부사장은 논란이 커지자 이틀 뒤에야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다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간보기를 한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출석요구에도 조 전 부사장은 ‘정신적으로 힘들다’며 ‘당장 출두하기 어렵다’고 거부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지고 출국금지가 이뤄지고 나서야 자진출석을 발표했다. 사태를 빨리 수습하고자 했다면 시간을 끌어서는 안됐다.

▲ 대한항공은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을 놓쳤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좀더 빨리 사과했어야 했고, 그 사과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했다.  

◇ 오너의 ‘제왕적 리더십’이 결국 참사 불렀다

여기에 대한항공 임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해 악화된 여론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국토부 조사를 위해 출석하던 날, 대한항공 임원이 건물 경비원에게 화장실 청소를 요구한 사실은 전 국민을 공분케 했다. ‘땅콩회항’ 사건의 중심에 선 피해자(사무장)를 조사하는 자리에 대한항공 임원이 동석해 답변 내용을 코치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자료조작을 하거나, 허위진술을 종용하는 등 오너 일가에 대한 과잉충성은 민심을 완전히 등돌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결정적으로, ‘땅콩회항’의 당사자인 조 전 부사장은 그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머리숙여 사과하고 나서야 “죄송하다”고 발언했다. 사건 발생 후 7일, 언론 공개 후 5일 만이다. 파문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태, 수습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윤호일 박사(54·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극지기후변화연구부장)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극한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대한항공의 이 같은 위기대응을 꼬집었다. 윤 박사는 “위기 때에는 모든 것을 벗어놓고 신속히 내려가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대한항공의 경우 모든 것을 벗고 내려갔어야 하는데 (조 전 부사장이) 완장 5개 중 2개라도 지키려고 찔끔찔끔 대응하다 사태를 키웠다. 대한항공은 (위기관리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한항공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실 국내외 언론이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기내서비스’ 문제가 아니라, 이번 사태가 재벌가의 권위적 리더십과 ‘슈퍼갑의 횡포’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사과(Care&Concern)의 방식’, ‘상황 수습 방안(Action)’ 그리고 ‘재발 방지 노력(Prevention)’이라는 ‘초기 위기관리 대응의 ABC’조차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위기관리 공식을 떠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은 대한항공이 기본적으로 ‘진심’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패착이라고 지적한다. 최고의 위기관리 전략은 ‘진정성’ ‘진심’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을 비롯해 대한항공은 많은 것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적인 신뢰추락, 사상 초유의 사건에 대한 국민적 반감, 해외 동포들의 대한항공 불매운동, 그리고 물 건너간 조현아 전 부사장의 후계문제까지… 위기관리 실패로 인한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기내서비스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회항하고, 승무원을 내리게 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과연 자신의 행동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대한항공을 보면서 회사가 처한 위기에서는 어떤 매뉴얼을 강요할 것인지 조 전 부사장에게 묻고 싶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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