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철도파업을 이끈 철도노조 간부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파업 자체는 정당하지 않지만, ‘파업의 전격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이번 판결로 인한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대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이나 사안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철도파업을 둘러싼 논란은 재점화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9일, 철도노조는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코레일과 정부의 민영화 움직임에 반발한 것이다. 철도노조의 파업 예고에 원칙에 따른 강경한 대응 방침을 내놓았던 코레일은 즉각 맞불을 놨다. 철도노조 집행부 194명을 고소·고발하고, 수천 명의 파업참가자들을 직위해제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철도파업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철도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계까지 가세했다. 이에 맞선 정부는 파업주도자 10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전국을 무대로 체포 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 건물을 경찰이 유리문까지 깨고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철도노조 간부가 체포를 피해 조계사로 피신하기도 했다.
많은 상처를 남긴 철도파업 사태는 결국 해를 넘기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30일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정치권이 나서서 노사 양측을 중재하고, 철도발전 소위원회를 구성해 철도민영화와 관련된 의혹을 해소하기로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역대 철도파업 중 가장 긴 22일의 파업사태는 이렇게 간신히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철도파업의 후폭풍은 거셌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코레일은 파업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에 착수했다. 130명이 해고되고, 250여명이 정직 처분을 받는 등 400여명의 파업 참가자들이 징계를 받았다. 이어 코레일은 철도파업으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철도노조에 16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조합비 116억원을 가압류 하기도 했다.
◇ 철도노조 “무죄 판결은 사필귀정”
그런데 지난 22일,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 등 철도노조 간부 4명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서부지법 형사 13부(오성우 부장판사)는 “경영상을 결단을 이유로 한 철도노조의 파업은 정당하지 않지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철도노조가 수차례에 걸쳐 파업을 예고한 점, 파업 전 필수유지인력을 회사에 통보해 파업에 대비할 수 있게 한 점, 대체인력 투입을 방해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전격적 파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즉,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사측이 파업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전격성’이 중요한데, 철도노조의 경우는 ‘전격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이러한 판결에 철도노조는 환호했다. 철도노조는 즉시 성명을 내고 “철도노조는 2013년 파업 전 수 차례에 걸쳐 여러 채널을 통해 파업을 통보했고, 코레일은 파업 전부터 철저하게 파업을 대비해왔다”며 “무죄 판결은 ‘사필귀정’이다”라고 밝혔다.
◇ 검찰 “대법원 판결과 정면 배치”
이번 판결은 또 한 번 적잖은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다. 검찰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울서부지검은 판결 직후 내놓은 입장을 통해 “이번 판결에 의하면 목적이나 절차의 불법에 관계없이 사전에 고지만하면 모든 파업이 전면 허용된다는 것”이라며 “최근 대법원 판결과도 정면 배치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검찰이 지적한대로 대법원은 최근 파업 참가자들의 ‘업무방해죄’와 관련해 전격성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내려진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지난 2009년 철도파업과 관련해 파업참가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깬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진 서부지법의 ‘무죄’ 판결은 대법원이 내린 판단과 다소 시각차가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법부 내에서도 ‘파업의 전격성’을 두고 엇갈린 판단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향후에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또한 이번 판결은 향후 손해배상 및 징계 문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가리는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년이나 지난 2013 철도파업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