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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H에게㉜-통진당 해산결정과 자유민주주의
[김재필 박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H에게㉜-통진당 해산결정과 자유민주주의
  • 시사위크
  • 승인 2014.12.23 17: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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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한 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자유민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군. 시간이 지나면 확실하게 드러나겠지만, 정말 이번 판결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결정일까? 난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렵게 이뤄낸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우물 안 개구리들’의 폭거라고 생각하네만…

그래서 오늘은 별 수 없이 지유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하네. 친구에게 잘 난 척 한다고 욕하지는 말게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말이란 건 알지?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폭력이나 혁명이 아닌 선거 같은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실현시킨다는 뜻이야. ‘민주주의(democracy)’는 ‘주의(-ism)’, 즉 이념이 아니고 방법이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민주적으로 실현시키겠다는 유럽 복지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도 있고, 옛 소련이나 중국, 북한 같은 나라들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도 있네. 중국이나 북한의 나라 이름에 ‘인민민주주의’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 민주주의에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건 아니야. 우리 학교 다닐 때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배웠지? 그것도 잘못 된 거야. 민주주의 반대 개념은 ‘독재’야. 그래서 한국적 특수성 운운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재를 한다고 합리화하는 건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지. 

대한민국은 분명 ‘자유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일세. 그래서 자유롭고 민주주적인 사회의 ‘시민’ 노릇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네.  하지만 대한민국이 생긴지 70년이 가까워졌는데도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가 뭔지 잘 모르는 ‘국민’들이 대부분이네. 그러니 자유주의와 반공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아마 대통령이나 대다수 헌법재판관들의 생각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네.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 정신은 ‘개인주의’일세. 개인이 있고 사회나 국가가 있다는 것이지. 개인의 자유와 생명, 재산 등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우린 아직도 개인보다는 집단이나 국가를 더 중시하네. 그래서 이번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 보듯 자유주의의 주요 가치들이 자주 시련을 겪게 되지.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 등이 ‘국가’에 의해 쉽게 훼손될 수밖에 없네. 그래서 그런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1987년 있었던 민주화의 결실로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가 헌법재판소이네.

자넨 혹시 자유민주주의가 먼저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이 왜 우리보다 체제 비판에 더 자유롭고,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비판의 자유와 관용정신을 중시하네. 자유주의자들은 우리 인간 개개인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정보와 사고능력의 부족으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고,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거야. 인간의 그런 불완전성이 타인에게 미치는 해악을 막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필요한 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권력자도 신이 아닌 이상 인식이나 윤리에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으니 법이나 제도로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해야 된다는 거야. 삼권분립도 그래서 필요한 거고. 그런데 우리나라 권력자들을 보게나. 자기들이 전지전능한 신인 것처럼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걸 자주 보네. 그건 그들이 아직 자유주의의 기본 정신에 무지하기 때문일세.

자유주의자들은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 저지르는 과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비판의 자유와 관용정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네.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나 되는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하는 권력자를 아무도 비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난 우리 역사에서 보듯 그런 권력자는 독재자가 되기 쉽네. 그래서 자유주의 정신에 투철한 사회에서는 권력자든 일반 시민이든 모든 구성원들의 종교, 사상, 취향 등을 인정하는 관용 정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야 다양한 가치들이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이번 헌재의 판결에 화가 나는 이유는 통합진보당이 좋아서가 아니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 가치들이 자라날 터전을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일세. 아마 이번 헌재의 ‘역사적 결정’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계속 부정적으로 언급될 수밖에 없을 걸세. 

지난 며칠 동안 정희성 시인의 <부끄러워라>는 시를 읽으며 지냈네. 우리 젊었을 때처럼 다시 살아 있는 게 부끄러운 시대가 되어버렸네. “부끄러워라/ 더이상 분노할 수 없다면/ 내 영혼 죽어 있는 것 아니냐/ 완장 찬 졸개들이 설쳐대는/ 더러운 시대에 저항도 못한 채/ 뭘 더 바랄 게 있어 눈치를 보고/ 비굴한 웃음 흘리는 것이냐/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제 그만/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차라리 파락호처럼 떠나버리자/ 아아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 좀비들만 지상에 남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