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의 급락하면서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국제유가의 급락세가 예사롭지 않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50.04달러로 마감한데 이어, 다음날인 6일엔 전날보다 2.11달러(4.2%) 떨어진 배럴당 47.93달러에 마감하는 등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9년 4월 이후 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국제유가 폭락에 두바이유 가격도 50달러선이 무너졌다. 이는 2009년 4월28일 배럴당 48.02달러 이후 최저가다. 두바이유는 국내 원유 수입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 유종이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도 술렁이고 있다. 국제유가 폭락이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유가 하락이 경제에 호재일 수 있지만, 모든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국제유가 3년만에 최저치… ‘희비 엇갈린 재계’

일단 국제유가 하락이 반가운 곳은 ‘물류’나 ‘항공’ 분야다. 특히 항공업계의 경우, 매출액 대비 유류비 비중이 40%에 달한다는 점에서 최근 유가하락에 따른 최대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 국제유가 급락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우려로 1900선을 내주며 장을 시작한 코스피가 전날보다 33.30포인트(1.74%) 급락한 1882.45로 거래를 마친 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시세를 살펴보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각각 연간 3,200만 배럴과 1,550만 배럴을 사용한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하락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유류비는 각각 3,200만 달러와 1,550만 달러 감소하게 된다. 매출액의 약 40%를 유류비로 지불해야 하는 두 회사 입장에선 더 없이 큰 비용 절감이 아닐 수 없다. 국제유가하락이 곧 ‘돈’인 셈이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유가 하락에 따른 유류비 절감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각각 80%, 181%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매출액의 20%를 유류비가 차지한다. ‘기름값’이 ‘비용’과 직결되는 것인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근 해운사의 선대운영 비용 중 유류비는 17%대로 떨어졌다. 그만큼 운영비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한진해운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연간 운영비가 3,000억원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한진해운은 전년 동기에 비해 유류비를 1,200억원 줄였다. 현대상선도 유가하락에 따른 수익성 개선에 힘을 받고 있다.

자동차 산업 등도 휘발유, 경유 등 기름값이 크게 떨어지면 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최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유가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하락 시 전체 구매력은 9조5,000억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5조2,000억원이 가계로 돌아간다.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소비활성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 앉아서 ‘쌩돈’ 날리는 정유업계

반면 정유나 석유화학 등 원유를 직접 다루는 ‘에너지 산업’ 분야는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일부 기업들은 지난 연말부터 비상근무에 돌입하거나, 경영계획을 다시 짜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판매하기까지 최소 한 달(30일)에서 40일 가까이 소요된다. 만약 이 기간동안 원유값이 하락하면 ‘재고차손’이 생기고, 이는 곧바로 정유사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예컨대 배럴당 100달러에 원유를 구입했는데, 원유값이 한 달 뒤 90달러로 떨어지면 국내 정유사들은 앉아서 배럴당 10달러씩 손해를 보는 구조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들은 도입 원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두바이유의 하락으로 손실을 떠안고 있다.

▲ 원유를 직접 다루는 정유업계는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환율하락, 정제마진 감소 등으로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정유업체들은 유가하락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SK이노네이션을 비롯해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개사는 지난해 1~3분기 적자만 9,711억원(영업이익률 -1.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되면 연간 적자가 1조원을 넘어설 전망도 나온다.

조선업계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유가가 계속 하락하게 되면 추가 유전개발 필요성이 줄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원유시추나 생산설비 발주가 감소할 것이고, 이는 매출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7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기관 5곳이 공동으로 내놓은 ‘유가 하락 영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유가 하락이 전반적으로 한국 경제에 긍정적 요인이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유가가 배럴당(연평균) 49달러까지 하락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p)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유가 하락이 제품 가격에 빠르게 반영돼 실제 소비시장에서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 수급여건과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 등을 고려해볼 때 국제 유가 하락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국제유가 하락이 장기될 경우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금융·통화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 전반에 유효수요 창출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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